이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미리 밝혀두지만, 나는 비교적 보수적이고 유교적 문화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섹스(sex)에 대한 얘기를 남앞에서 하는것 자체를 터부(taboo)시 하는 편이다. 하지만 주로 그 '섹스'에 대해, 혹은 그에 연관된 '사랑'에 대해 다루고 있는 영화 '오감도'에 대해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기에 나 스스로의 금기(?)를 이번만큼은 깨보기로 했다.
나는 사실 영화 '오감도'를 극장에서 보지는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극장에서 볼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 이후에라도 찾아서 볼 생각조차 없었다. 이 영화는 '에로스(eros), 그 이상의 사랑 이야기', '사랑의 편견을 벗어라!'라는 문구로 어느 정도의 선정성을 내세워 홍보를 했고, 그것이 영 내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팀 직원들과 퇴근 후 영화를 보곤 했었는데, 팀 직원중 한명이 '오감도'를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접하게 된 케이블TV를 통해서였다. 다소 부정적이었던 영화에 대한 기대치와는 달리, ―내 감정의 기복 탓일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첫번째 세그먼트(segment)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오감도'는 총 5개의 에피소드(episode, 혹은 세그먼트)로 구성되어있는 옴니버스 영화다. 이 글에서는 첫번째 에피소드인 'His concern'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다.―
'His concern'은 조각같은 외모와 쉴세없이 돌아가는 잔머리와는 다르게 여자앞에서는 쑥맥인 한 '남자', 그리고 시크(chic)한 매력을 가진 큐레이터인 '그녀'의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 그리고 하룻밤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두 남녀의 독백(獨白)이다. 그 중 대표적인 몇가지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혼자 다니는 사람에게 좌석 티켓이라는 것은, 어쩌면 일종의 즉석복권일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도 혼자 다니는 사람에게 옆에 앉게 될 사람은 매우 중요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했으나, 너무나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옆에 앉는다고 상상해 보자. 그 얼마나 곤욕스러운 일인가? 10분의 동행이 10시간 같을 것이고, 심지어 숨쉬기 조차도 곤욕스러울 것이다.
반면, 약간은 침울하게 시작한 여행이라 할지라도, 옆에 앉은 사람이 유쾌하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긴 시간의 이동도 지극히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이점은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 혹은 배우자, 삶의 곳곳에서 부딪히거나 엮일 사람을 내 의지대로 선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삶의 질이 천차만별이 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 사람들이 나의 "복권(福卷)"이라 할만 하다.
"그녀와 섹스를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그녀와 섹스를 하는 사이라서 좋은 것이라면 사랑이라 부를만한다."
앞서 밝혔듯, 이 말은 내가 지극히 터부시 하던 영역에 해당하는 대사다. 하지만 이 대사는 근래 하고 있는 한가지 고민에 괜찮은(?) 답을 해주고 있다.
그 동기는 불분명하지만, 근래 '사랑'이라는 말과 행동, 그 감정의 정체에 대해 원론적으로 생각해보고 있다. 어떤 철학자는 사랑의 근본을 '희생'이라고 했고, 어떤이는 '섹스'라고도 했다. 이것은 정신적인 것이냐, 육체적인 것이냐에 대한 것인데 이들은 모두 내 기준에 명확한 정의는 아니었다. '희생'으로 시작된 '사랑'이라 할지라도, 남녀간의 사랑이라면 육체적으로 끌릴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닌것은 아니다. '섹스'라는 행위 자체 만으로는 번식의 본능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사랑'이라 부르기엔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사랑'에 대해 객관적으로―'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객관적일 수 없는 개념일지 모른다.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비교적' 객관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정의하기 위해서는 '육체적'요소와 '정신적' 요소가 적절히 조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대사는 비교적 명쾌하게 기준선을 제시해준다. '섹스'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감정이 '사랑'인지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섹스의 대상'에 따른 감정이 '사랑'인지 여부를 결정짓는 것이라면, 내 고민에 대한 납득할 만한 답이 된다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섹스'라는 행위 그 자체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섹스'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것이 아닐까?
'오감도'라는 영화가 평단이나 관객으로부터 그리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는 아닌것 같다. 사실 나는 영화의 극히 일부분(약 20% 수준)만을 본 것이고, 그 부분에서 역시 '감동'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가 본 그 일부분의 영화에서는 어느정도 곱씹어 볼 이야기들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볼만 하다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인류가 영원히 정의하기 어려울 일이겠지만,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