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감성,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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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에 해당하는 글(4)
2008/07/28   "어느 50대 노부부의 이야기" - 작자미상
2008/07/23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즐기기 좋은 김치 웨스턴
2008/07/05   [핸콕] 사랑하기에 슬픈 영웅
2008/07/02   황장엽이 바라보는 "촛불 독재" (1)


"어느 50대 노부부의 이야기" - 작자미상

후배의 미니홈피에서 우연히 읽게 된 글이다. 후배 역시도 어디선가 퍼온 글이기에, 처음 이 글을 쓴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단지 실화라는 덧붙임 말만 있을 뿐이다.
사실 줄거리로 보면 흔하디 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흔한 이야기임에도 읽을 때마다,혹은 들을 때 마다 가슴 한 켠이 무거워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내가 공감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樹欲靜而風不止,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아니 하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가 기다려주지를 않는다"고했다. 이것은 비단 부모에게 뿐만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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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걸레질 하는 소리]
여 : 아! 발 좀 치워봐.
지금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그녀, 아내...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만약 그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 역시 아내라고 대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 : 점심은 비빔밥 대강 해먹을라 그러는데, 괜찮지?
남 : 또 양푼에 비벼먹자고?
여 : 어, 먹고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집안 청소 다 했더니, 힘들어 죽겠어.
남 : 나 점심 약속 있어.
여 : 그런 얘기 없었잖아.
남 : ...... 있었어. 깜박하고 말 안한거야. 중식이 만나기로 했잖아.
여 : ...... 그래? 할 수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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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긁어서 먹는 소리]
그렇다. 아내에게는 일요일에 만날 친구 하나 없다. 아이들 키우고 내 뒷바라지 하느라 그렇게 됐다는 게, 아내의 해묵은 레퍼토리다. 그 얘기 나오기 전에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

일단 밖으로 나가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친구들을 끌어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 데......
여 : (아픈 듯) 어디 갔다 이제 와?
남 :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여 :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혔나봐. 약 좀 사오라고 그렇게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남 :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여 : 손이라도 좀 따줘?
남 : 그러게... 그렇게 먹어대더라니...... 좀 천천히 못 먹냐?
여 : 버릇이 돼서 그렇지 뭐... 맨날 집안일 하다 보면, 그냥 대강 빨리 먹고 치우고......
      이랬던 게......
어깨에서 손으로 피를 몰아서 손끝을 바늘로 땄다. 아내의 어깨가 어느새 많이 말라 있었다.

다음날, 회식이 있어, 또 늦은 밤 집으로 들어가게 됐다.그런데 아내가 또 소파에서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다.
남 : 여보...... 들어가서 자.
여 : 여보...... 나 배가 또 안 좋으네.
남 : 체한 게 아직 안 내려갔나?
여 : 그런가봐. 소화제 먹었는데도 계속 그래.
남 : 손 이리 내봐.
아내의 손끝은 상처 투성이였다.
남 :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여 : 어. 너무 답답해서......
남 : (버럭)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 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뛰기 시작했다.

[응급실 소음소리]
여 : (속삭) 여보. 병원 오니까, 괜찮은 거 있지.
남 : 가만 있어봐. 검사 받아야 되니까.
여 : 아니... 진짜 말짱해. 아까 잠깐 그렇게 아팠나봐.
남 : 온 김에 검사 받고 가.
여 : 뭐하러 그래 응급실 얼마나 비싼데~ 내일 병원 문 열면,가서 검사 받을게.
남 :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여 : 가자니까. 완전 바가지야.
잡을 틈도 없이, 아내는 먼저 일어나 나간다. 나도 머쓱하게 아내를 따라 나온다. 하긴 아내의 말처럼 응급실은 보통 진료비보다 훨씬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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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소음, 걷는 소리]
남 : 진짜 괜찮아?
여 : 응. 나 학교 다닐 때도, 시험 보기 전날이면, 배 아프고 그랬다?
      그런데 병원만 딱 오면, 배가 안 아픈 거야. 그게 다 신경성이라 그런가봐.
남 : 그러게, 사람 놀래키고 그래~~ 아프면 바로바로 병원 가고 그래.
여 : 어머~ 당신 놀랬어? 어유~ 그래도 홀아비 되긴 싫었나봐?
남 : 싫긴 뭐가 싫으냐? 홀아비 되면, 젊은 마누라도 새로 들이고 좋지.
여 : 내가 말을 말아야지......

[걷는 소리]
참 오래전부터 내 곁에서 이렇게 함께 걸어왔던 아내.
그녀와 아주 오랜만에... 함께 길을 걸어본다.
다음날 병원에 다녀온 아내는, 회사 앞에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여 : 난데, 우리 점심 먹을까?
남 : 바쁜데......
여 : 회사 앞까지 왔는데?
남 : 그래. 알았다. 병원은 갔다 왔어?
여 : 어. 신경성 위염이래. 남편이 속썩이냐고 물어보더라. 의사선생님이......
남 : 나만큼 잘하는 남편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뭐 먹고 싶어?
여 : 죽 먹자. 요즘 좋은 죽집 많다며? 그런 데 가서 우아하게 먹어보고 싶다.

[죽 떠먹는 소리]
남 : 여기 괜찮지?
여 : 횟집에서 죽도 파네?
남 : 어. 우리 회식할 때 자주 오는 데야.
여 : 그런데 너무 비싸다. 죽 한 그릇에 만 오천 원씩이나 해?
태어나서 이렇게 비싼 죽은 처음 먹어보네.

[바닥까지 긁어먹는 소리]
갑자기 열심히 죽을 먹는 아내가 안쓰러워 보였다. 만오천 원짜리 죽 한 그릇이 아까워, 그릇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 아내. 난 몇 십만 원짜리 술도 아무렇지 않게 먹는데, 내 아내는 태어나 이렇게 비싼 죽을 처음 먹어 본단다. 그동안 내가 뭘 하고 살았나 생각이 들었다.
여 : 여보, 할 말이 있는데.
남 : 어, 얘기해.
여 : 추석 때 있잖아. 친정부터 가면 안 될까?
남 : 왜 또 그래~ 어머니 성격 알면서~
여 : 그러게. 30년 넘게 어머니 성격 아니까, 명절 때마다 당신 집부터 갔잖아?
남 : 명절 때 시댁부터 가는 건, 당연한 거야.
여 : 당신 집은 오남매야. 우리 집은 오빠랑 나밖에 없잖아.
      엄마가 얼마나 외로워하시는데......
남 : 추석 끝나고 가면 되잖아.
여 : 어머니도, 당신도 웃겨. 당신!
남 : 여보...... 왜 이래. 새삼스럽게.
여 : 그럼 이렇게 해. 추석 때 당신은 당신 집 가. 난 우리 집 갈 거야.
남 : 어머니가 가만 계시겠어?
여 : 안계시면 어떡 할 건데? 나도 할 만큼 했어. 맘대로 하라 그래.
남 : 당신, 오늘 좀 이상하다.
여 :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내가 이정도 얘기하는 것도, 그렇게 이상해?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노발대발하시며,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난리를 치셨다. 지난 30년동안 한번도 없었던 일이니, 이번만큼은 노엽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렸지만, 오히려 마누라 편든다며, 내게도 잔소리를 늘어놓셨다.
여동생은 여동생대로 제 새언니 흉을 보면서, 무슨 며느리가 그렇게 제멋대로냐고 했다. 자기는 임신을 핑계로, 추석 전부터 우리집에 와서 쉬고 있으면서, 제 새언니가 친정에 간 건, 그렇게 못마땅한가 보다. 아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니, 우리 가족이지만, 하는 말마다 행동마다 참 얄미울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문 탕 열고 들어오는 + 클래식 소리]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태연히 앉아서, 책을 보고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남 :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음악 탁 끄는(쇼팽의 이별곡) 소리]
여 : 음악 들으면서 책 보잖아. 왜?
남 : 제정신이야? 어머니 얼마나 화나셨는지 알면서, 명절 내내 전화 한 통화 안해?
여 : 어머니 목소리 별로 듣고 싶지 않았어. 간만에 좋은 기분 망칠 필요 없잖아.
남 : 뭐?
여 : 가끔 뉴스에서 주부우울증으로 투신자살하는 여자들 얘기 들으면, 생각했었어.
      남은 가족들은 어쩌라고 저랬을까...
남 : 지금 그 얘기가 왜 나와?
여 : 그런데, 나 이제 이해가 돼. 그 여자들은 남은 가족들이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택했을 거야.
남 : 그게 말이 돼?
여 :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처음엔 조금 슬프겠지만, 금방 잊을 거야!
남 : ...... 여보......!
여 : (울며) 여보.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나,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랬어. 그래서, 내가 어디로 갔을까 놀라서
      나를 찾아주길 바랬어. 침대에 혼자 누워서 당신이 헐레벌떡 나타나 주면,
      뭐라고 하면서 안길까... 혼자 상상 했었어. 그런데, 당신 끝내 안 나타나더라.
      끝내 나 혼자 두더라.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날 나와 아내는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검사 결과에 대해 얘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가는 내내 아내는 무거운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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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 죽으러 가냐?
여 :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남 : 요즘 위암? 아무것도 아니야. 요즘은 다 고쳐.
여 : 그래. 누가 뭐래.
남 : 악성도 다 고친다구. 내 친구 차교수 알지? 그 친구도 위암3기였는데, 멀쩡하잖아.
      요샌 아무 것도 아니야 그런 거! 진짜 아무 것도 아니라구!

누구를 위로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건지. 큰 소리 치면서도 운전대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그러면서도 난 끝까지 중얼거렸다.

남 : 암? 쳇! 그런 거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내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수술도 하기 어려운 상태니 마음의 준비 를 하시라고. 가고 싶은 데 있다고 하면 데려가 주고, 먹고 싶은 거 있다고 하면 먹게 해 주라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자기가 뭔데. 자기가 하느님인가.
자기가 남은 시간을 어떻게 아나. 내 아내가 내 곁에서 3개월을 살지, 3년을 살지, 30년을 살지 어떻게 알고......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한단 말인가. 따지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멱살이라도 잡고, 입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의사의 입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여 : ...... 여보......!
아내의 음성이 조용히 귓가에 내려 앉는다. 아내가 살포시 팔짱을 끼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댄다. 난 아내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다. 지금 그녀를 보면, 절망으로 가득한 내 얼굴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러긴 싫었다.
여 : 여보......
남 : (무뚝뚝하게) 왜!
여 : ...... 미안해.
남 :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아까 말했지? 차교수도 처음에 병원 갔을 때, 똑같이 말했대.
      차교수도 3개월, 아니 2개월 산다 그랬대! 그런데 지금 봐. 멀쩡하게 다니잖아.
      친구가 나보다 힘도 더 세고 더 튼튼해! 의사 자식들이 하는 말, 저거...... 다 뻥이야!
      사람 겁주고...... 어? 겁줘서 돈 뜯어낼라고 하는 소리야! 믿지 마, 저런 말!
나는 바보다. 끝까지 아내 앞에선 강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큰 소리 치고 있다. 하지만 난 지금 너무 무섭다. 아내가 잡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너무너무 겁나고 무섭다. 아내의 따뜻한 손 이 내손을 꼭, 더 꼭 잡아준다.

[엘리베이터 띵 올라가는 소리]
집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서로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주위에서 누가 암에 걸렸다, 누구 부인이 죽었다.. 이런 얘기 많이 듣는 나이가 됐지만, 그런 일이 내게 닥칠 거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마시라고 잔소리 해 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를 생각했다. 처음으로 우리 집으로 장만한 이 아파트에는 아내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곳이다.

[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
여: 여보, 우리 이사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아내가 말했다.
여 : 여기 우리 둘이 살기에는 너무 넓잖아?
남 : 됐어. 난 여기가 좋아.
여 : 아니야. 너무 낡았어. 이 집 팔고 조금 작은 평수, 새집으로 이사가면 좋잖아.
남 : 됐다고 하잖아.
여 : 이 집이 당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 집...... 정말 꼴도 보기 싫다.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갑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백번 도 넘게 해온 소리들을 해대고 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 대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담배 불 켜는 소리]
여 : 또...... 또 담배......
남 : 또...... 잔소리...... 그러니까 애들이 싫어하지.
여 :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남 : 코스모스?
여 :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여 :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남 : 아니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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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부는 + 갈대숲 일렁이는 소리]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 :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남 : 뭔데?
여 :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남 : 뭐?
여 : 내년 4월에 탈 거야. 2천만원 짜린데,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남 : 당신 정말......
여 :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만 드려.
      엄마 이가 안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 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문 여는 소리]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침대와 소파 식탁 정도만이, 모든 것이 빠져나간 자리에, 오도카니 남아 있었다.
남 :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 : 내가...... 오빠한테 부탁해서 이사 좀 해달라 그랬어.
남 : 뭐?
여 : 오빠가 동네 가르쳐 줄 거야. 여보, 나 떠나고 나면 거기 가서 살아.
남 : 당신 정말 왜 이래! 그럴 거면, 당신이랑 같이 가.
여 : 아니야. 난 새집 안들어 갈래. 거기선 당신이 새 출발해야지.
남 : 당신은, 내가 정말 당신 잊길 바래?
여 : ...... 솔직히 말하면 아닌데...... 그렇다고, 당신이 나 떠나고 나서, 청승 떨면서 사는
      건, 더 싫어.
텅 비어 있는 집의 한 구석에, 우리 부부가 앉아 있다. 베란다 사이로 스며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아내가 떠나고 난 내 삶은, 지금 이 빈집처럼 스산할 거라는 걸 안다.

[풀벌레 소리]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 :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로포즈 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남 : 내가 뭐라 그랬는데......
여 :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남 : 그랬나......
여 :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남 : 그랬나......
여 :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남 : ...... 자......!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 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남 :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여 : ......
남 : 여보.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여 : ......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어 본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렇게, 난, 아내를 보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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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소설, 아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즐기기 좋은 김치 웨스턴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좋은 놈 박도원(정우성)과 나쁜 놈 박창이(이병헌), 그리고 이상한 놈 윤태구(송강호). 세명의 인물을 정면에 세운 한국형 서부 영화이다. 일부 언론에서 말하듯 일명 "김치 웨스턴 무비"
익히 보아온 원조 서부영화의 소재들이 이 영화의  밑바탕이 된다. 보물지도와 열차강도. 그리고 최고의 총잡이가 되고자 하는 집념까지. 서부영화의 원조라 할수 있는 헐리웃 영화의 배경이 미국 서부 개척시대인 반면, 이 영화의 배경은 일제강점기의 만주대륙이라는 점이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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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는 잠잠해질만 하면 터지는 "박진감 넘치는 총격전"이 묘미이고, 그런 볼거리를 쫓다보면 2시간 여의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재미는 있으돼 남는 것은 없는 영화"라고나 할까?
아마도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영화 관람평도 그로 인한것이 아닌가 한다. 보여주는 볼거리에 주목한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영화일 것이고, 영화의 "내포적 의미"에 무게를 두고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는 최악의 영화일테니 말이다.

지금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닌듯하다. 단지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집중하다보니, 그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너무 짧고 단순하게 내 밷어버려 보는이들의 머릿속에 그 잔상이 남지 않았을 뿐이다.
박도원은 윤태구와의 대화에서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은 누구나 큰 꿈을 쫓을 권리가 있어, 하지만 무언가를 갖기위해 무엇인가를 쫓다보면 무엇인가에게 쫓기게 되지. 결국 쫓고 쫓기는 순환의 굴레를 평생 벗어날 수 없는게 인생이야."
이 이야기를 되짚어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맞닿아 있다. 보물지도를 쫓다보니 누군가에게 또 다시 쫓기게 되고, 최고의 총잡이가 되고자 하다보니 또 다른 누군가의 원한을 사 또다시 쫓기게 되는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 한마디 대사에 압축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렇게 의미를 "짜 내고자 하는 노력"자체가 어쩌면 매우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비롯한 모든 문화는 향유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그 즐거움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의식이 전달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일단 즐겁게 즐기기에 충분한 영화이다. 이병헌의 차가운 눈빛과 총 다루는 기술은 소름끼치도록 아름답고, 정우성은 그보다 더 멋있을 수 없으며, 송강호는 그렇게 능청스러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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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김지운, 김치 웨스턴 무비, 놈놈놈, 송강호, 영화, 이병헌, 정우성


[핸콕] 사랑하기에 슬픈 영웅

슈퍼맨 못지 않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까칠한 성격과 홈리스(homeless)와 같은 행색을 하고 있는 슈퍼 히어로(super-hero) "핸콕". 이것이 대부분의 방송광고에서 나오는 영화 "핸콕"에 대한 소개말이다. 사실 번듯한 외모에 명석한 두뇌, 그리고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 능력으로 하나같이 윤색(潤色)되었던 여느 슈퍼 히어로와는 다른, "핸콕"의 모습은 "슈퍼 히어로 액션물"에 재미를 느껴왔던 나에게 호기심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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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반부에서는 예고에서와 같이 주인공 핸콕의 능력과 행실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는 핸콕의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 할애되어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이야기가 사뭇 다른 점을 보고 후반부의 이야기는 '속편'으로 만드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의견도 낼 정도로 각각이 재미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즉 90여분이라는 러닝타임의 한계로 인해, 풍부하게 만들어 갈 수 있었던 내용을 너무 짧게 정리해버린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영화 "핸콕"을 보고나서 느끼는 점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슬프다는 감정이 가장 앞섰다. 슈퍼 히어로라는 이유만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적(敵)과, 사랑앞에 약해질 수 밖에 없는 운명. 그러나 자석처럼 끌리는 인연(因緣)으로 그들의 고난은 반복될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적당한 수준의 해피엔딩을 찾아가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운명을 마냥 행복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나에게는 "슬픔"이 먼저였던 것이다.
영화 "핸콕"이 "재미있는 영화"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마냥 즐겁기만 한 영화이지는 않았기에, 이 시점에서의 감성적 판단은 보류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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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이 바라보는 "촛불 독재"

내가 기억하는 첫 촛불 시위는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효순이 미순이 사건"이었다. 그 사건에서의 촛불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두 어린 혼(魂)을 위로하는 의미였고,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진행된 '미군당국과 미온적인 정부'에 대한 항의였다. 물론 일부 강경한 시민단체 ― 시민단체 본연의 의미를 돌이켜보면, 폭력성을 띄는 단체까지 시민단체라 칭하기 부끄럽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시민단체라 칭하고 언론에서 역시 그렇게 칭해줌으로 여기서는 잠깐 그 표현만을 빌도록 하겠다 ― 에서는 무력행사도 불사했으나 그들은 그 촛불에 동화될 성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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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의 어떤것이던 그 것은 변질되기 나름이라했던가? 그 촛불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도 변화해왔다. 어린 혼을 위로했던 촛불 시위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계기로 정치색을 입더니, 이제 와서는 특정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기 좋아하는 집단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아마 그들은 애초에 그 촛불이 가졌던 '순수'와 '평화'의 이미지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과 '잠재된 폭력성'을 숨기려 했을런지도 모른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촛불 시위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갔다.
물론 정부가 미국과 졸속으로 협상을 마친 후, 평화적으로 시작됐던 시위였지만, 점차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익명성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중심이되어 시작된 것인만큼 어느정도의 변질은 예상됐던 바이다. "평화"와 "애도"를 상징하는 촛불은 미국과의 다소 "굴욕적"인 협상을 "애도"하듯 하나둘 켜져갔으나, 군중심리에 의해 촛불을 든 사람들은 거리로 나갔고, 그 시위대는 청와대로 행진했다.
사실 "문화 집회" 혹은 "문화 행사"로 이뤄졌던 초기의 시위는 매우 바람직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국민 모두에게 협상 내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정치적으로 정부에 압박을 줄수 있는 카드였다. 이는 보다 현실적으로 협상 내용을 보완해 가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또한 정부 입장에서도 대미 협상을 하는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힘"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집회가 길거리로 나오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가 청와대로의 행진을 시작했고, 군중들은 군중심리의 지배를 받아 모두 그리로 향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권의 대표적인 상징인 만큼,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이 그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위대는 그들의 행진을 가로막는 공권력에 대항했고, 폭력이 오고가는 상황에 이르러버렸다.
한번 생각해보자. 시위대를 막지 않아 그들이 청와대에 이르고, 그들이 청와대의 담을 넘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이 경호 시설 안에 무단 침입했으므로 사살(死殺)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을 방치해 국가 통수권자가 시위대에게 봉변을 당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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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의 정부로서는 강경하게나마 그 시위를 진압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가 주장하고 있는 "협상 완전 무효"는 외교 관례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혹여 "대한민국"이 전복되고, 새로운 국가가 "개국(開國)"된다면 또 모를일이다. 지금 현재의 정부로서는 애초의 협상이 '졸속'이었음을 시인하고, 꾸준한 추가 협상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한 후, 석고대죄(席藁待罪)하는 자세로 남은 사안들을 헤쳐나가는 것이 최선이며, 유일한 길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위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실현시키기를 원하며, 공권력에 폭력적인 대응을 하고 있기에, 정부로서는 사회안정을 위해 강경진압이라는 무리수를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늦게나마 옳은 방향으로 외교적인 문제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으며, 종교계가 나서서 폭력적으로 변질되어버린 시위를 원 위치로 돌려 놓고 있다는 점이다.

혹시 시위에 참여하는 대중들은 중학교 즈음 사회 교과서에 나왔던 내용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 내각제의 장단점을 말이다. 대통령 중심제는 대통령 임기중 국정이 안정되는 반면, 지도자의 소신이 국민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민의가 즉각 반영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의원 내각제는 민의가 비교적 빠르게 정책에 반영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국정이 안정되지 못하고 님비(NIMBY)현상의 영향으로 지도자가 소신있는 정책을 펼쳐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는 내용이다.
어찌됐던 우리는 그런 장단을 고려해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하고 있고, 현재의 우리 대통령도 우리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한 사람이다. 우리 손으로 우리의 권리를 위임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과오를 범하더라도 우리도 거기에 일말의 책임을 나눠야 한다. 물론 그가 우리의 뜻을 거스를 경우, 그에 대해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합법"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혹자는 "대통령 뽑을 사람 없어서 투표 안했다"면서 대통령의 과오를 함께 나눌 책임에서 발을 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할수 있는 변명이 아니라, "나는 정치나 정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만 선거에 나왔을 경우 투표권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사상을 대표할 인물을 찾아내고 지지하는 것으로 그 권리를 행사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점은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무이기도 하기에, 상기와 같은 "핑계"는 적합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대통령을 옹호하는 듯한 나 역시도,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대운하 사업"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단기적 성과 위주의 업무 스타일도 우려됐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의 선택을 했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적 상황들은 우리가 가야 할 정도(正道)에서 한참 어긋나 있다 느껴지기에 이런 글을 남겨본다.

이런 시점에 북한 고위 인사 출신 탈북자인 황장엽씨의 인터뷰 기사가 나와 여기에 같이 소개해보고자 한다. 부분부분 나도 약간은 갸웃하게 되는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나, 북을 대하는 태도에 던지는 따끔한 한 마디는 나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한다.
이 기사에는 "황장엽 씨는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민주주의를 찾아 온분이다 그분말에 백프로 공감" 이라는 댓글과 "황장엽씨 눈에는 기본권행사하는 모습이 무질서로 보이는 모양이져?^^"라는 약간은 비아냥스러운 댓글에 많은 사람들이 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엄밀히는 촛불 시위가 도로로 나서는 순간부터, 그보다는 약간 관대하게 봐서도 촛불 시위대가 청와대를 향해 이동하면서 부터, 그리고 아무리 관대하게 본다해도 그들 손에 파이프가 들리고, 경찰에 손상을 입히면서부터 그들은 스스로의 기본권을 포기하고, 스스로가 폭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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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관련 인터뷰 기사의 전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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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고위급 인사로 활동하다 지난 1997년 대한민국으로 전격 망명했던 황장엽씨가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를 ‘대중독재’, ‘촛불독재’ 등으로 표현해 논란이 예상된다.

황씨는 2일 과격 촛불집회 반대 시민연대 측에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를 통해 황씨는 연일 이어지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와 시위참가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황씨는 “지금 광화문 거리는 이전의 자유민주주의 네거리가 아닙니다. 쇠파이프, 고함, 파괴, 불을 든 사람들, 그 어떤 질서나 법도 통하지 않는 무법의 사각지대로 변했습니다”라며 폭력이 수반되는 시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촛불시위 참가자들과 미국산 쇠고기 관련 일부 방송사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독재’란 표현을 사용했다.

황씨는 “지금 우리 한반도에는 두개의 독재가 있습니다. 북한의 독재는 반항의 씨를 말리는 3대 멸족제도, 즉 김정일이가 온갖 전횡을 일삼는 국가독재이고 남한은 좌익들의 선동에 넘어간 시위자들로 하여 ‘대중독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며 “두 제도를 체험한 저의 눈으로 보면 북한의 ‘권력독재’와 남한의 ‘촛불독재’가 신통히도 비슷합니다”라고 말했다.

연일 이어지고 있는 촛불시위가 순수한 시민들이 아닌 이른바 진보세력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는 국방위원회라는 정부 지휘에 의해 형성된 독재권력과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일부 방송사와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를 북한의 ‘선전부’와 빗대기도 했다.

그는 “독재권력을 합리화하는 조선노동당 선전부의 선동기술에 못지않게 대중독재를 부추기는 KBS, MBC 방송국도 있습니다. 북한에는 독재권력에 의해 정치범 수용소가 있고 온갖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면 남한에는 인간의 존엄을 매장하는 인터넷 아고라 수용소가 있고 촛불시위자들이 감행하는 인민재판과 신문, 광고주 죽이기, 온갖 폭행과 파괴들이 있습니다”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혔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성숙된 시민민주주의란 요구와 합의의 과정이 되어야지 끝장내겠다는 결론주의로 전락할 때에는 불법적이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더욱이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는 남한의 것만이 아니라 북한에도 가져가야 할 민족공동의 이념이며 자산이기도 합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사랑하고 배우려했던 자유민주주의는 촛불시위자들이 보여주는 폭력의 자유도 불법의 민주주의도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당신들이 진정 삶의 권리와 정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왜 북한인권을 위해 지금껏 촛불을 들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이 정말 민주주의 국민이라면 왜 지금껏 김정일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시위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까”라며 북한의 열악한 인권 현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메시지를 마쳤다.

황장엽씨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총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북한의 권력 실세 중 한 명이었으며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 현재는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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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촛불시위, 황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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