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시리즈"에 대한 얘기는 수년전부터 익히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는 소설이라며 한번쯤 읽어보길 권했지만, 그 당시만해도 판타지나 무협 소설에 큰 흥미가 없었던 나에게 그것은 큰 흥미거리가 되지 못했다. 베스트셀러이니, 스테디셀러이니 해도 나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던 '해리 포터 시리즈'의 줄거리를 처음 접한 것은 영화화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봤을 때였다. 당시에는 다소 냉담하게 영화를 접했음에도 불구하고 꽤 흥미롭게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 결국 그후, DVD를 구입해 영어 공부 목적으로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을 30번이상 반복 시청하기도 했다. ―
나는 최근 이동중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읽을 거리'를 찾던중 우연히 파일로 된 "해리포터 시리즈"를 발견했다. 여전히 무협이나 판타지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핸드폰에 저장해 가볍게 읽을 것이었기에 한번 읽어보기로 하고 해리포터 전권을 읽기 시작했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편의 '해리 포터 시리즈' 영화를 봤었는데, 영화와 다르거나 영화에서 생략되었던 내용들을 찾아내며 읽는 재미가 나름 쏠쏠해 의외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영화를 먼저 본데 따른 부작용도 있었는데, 영화화된 장면들이 책을 읽으면서 얻게 되는 상상력에 한계로 작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특히 인물의 모습을 상상하기가 힘들었는데, 이는 아마도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리라.
첫 번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부터, 마지막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까지를 모두 읽고난 뒤의 첫 느낌은 "해리포터"시리즈가 "독자와 같이 성장하는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주인공 3인방(해리 포터, 론 위즐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과 같은 나이로, 그리고 그들과 같이 나이 먹어 가는 독자들과 같은 나이로 말이다. 주인공 3인방이 호그와트에서 지내는 동안의 연대기(年代記)라라고 할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는 마냥 '판타지 동화'같기만 하던 내용이 편을 거듭하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더니, 후반부인 "해리 포터와 혼형 왕자",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 이르러서는 운명과 죽음, 심지어는 호접몽(胡蝶夢)을 연상케 하는 장면까지 있는 것이다.
"운명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비교적 흥미와 재미 위주의 줄거리를 보여주던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의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중의 하나가 '운명'에 대한 것이다. 후반부에 덤블도어에 의해 언급되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주인공 해리가 볼드모트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예언으로부터 이 소설의 내용은 시작된다. 예언을 전해 들은 볼드모트가 해리를 살해하려다 실패했고, 해리의 부모가 대신 그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자라면서 그런 사실을 깨달은 해리와 그의 친구들은 부모의 원수를 갚고자 더욱 볼드모트와 격하게 맞서 싸웠지만, 자신이 볼드모트를 제거할 수 있다는 예언을 모두 듣는 순간 고민에 빠진다. 자신이 볼드모트와 싸우는 것은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것은 그에게 '볼드모트와의 싸움'이라는, 피할수 없는'의무'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는 그에게 작지만 중요한 깨달음을 요구한다. '운명이라는 것은 결국 정해져 있는 것이 아리고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볼드모트와의 싸움에서 '볼드모트와의 싸움은 자신의 운명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싸워야 한다'는 다소 피동적(被動的)인 자세와, '볼드모트는 부모님의 원수이자, 세상을 위해서 없어져야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능동적(能動的)자세는, '싸워야 한다'는 같은 결론에 도달할지라도 그 결론에 마주하는 자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들은 결국 "운명의 선택을 받을것이냐, 운명을 선택할 것이냐"라는 다소 철학적인 고민에 도달하게 하는데, 나는 여기서 "우리가 선택하는 일 하나하나가 모여, '운명'이라는 단어를 성립시키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성급히 내려본다.
호접몽(胡蝶夢)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는 내용이 진행될 수록 철학적인 영역에 손을 대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호접몽을 연상시키는 '킹스 크로스'라는 장(章)까지 등장한다. 여기서 해리는 죽음과 삶,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덤블도어와 대화를 통해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깨달음을 찾는다. 말 그대로 해리는 죽은것이 산것인지 산것이 죽은 것인지 모르는 경계에서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 호접몽을 경험한 것이다.
'번역의 질' 문제일 수 있지만, 해리 포터 시리즈의 초반부는 흥미로운 내용과는 별개로 매끄럽지 못한 표현들이 군데군데 눈에 거슬렸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표현들도 탄탄해졌으며 흥미로운 소재들을 짜 맞추는 구성도 정교해진다는 느낌이었다. 판타지 소설을 선호하지 않던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이 시리즈가 왜 그렇게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지도 공감할 수 있었다. 처음 자녀들의 기저기값을 마련하고자 해리포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는 조앤 롤링의 인생역전에 놀라움을 표하고, 이런 책을 집필할수 있는 그의 상상력에 경의(敬意)를 표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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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을 위한 첫번째 조건
빌게이츠와 워렌버핏은 25살이라는 적지 않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다양한 면에 대해 소통하면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특히 크게 성공한 재력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도 유명해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주말 저녁, 특별히 할일 없이 "리모컨 운전"을 하다가 "빌게이츠 & 워렌버핏 학교 가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이라는 세계적인 두 거부(巨富)가 버핏의 모교인 네브라스 링컨대학을 찾아 학생들과 질의·응답 하는 내용을 녹화한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했던, 혹은 그들이 성공하는데 밑바탕이 되었던 인생의 철학들을 학생들에게 전달한다는 취지리라.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들에게 학생들은 경제, 사회, 인생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대강의 질문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사회적 성공을 위한 방법
- 세계 경제의 흐름
- 부자들의 자녀 교육법
- 부유한 자들의 사회적 책임(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사실 이들에 대한 대답은 매우 간단했고, 심지어는 상투적이기까지 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인간 관계를 넓히고 화술(話術)을 익혀야 한다던가, 중국의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해질 것이라던가, 자녀들을 올바로 키우기 위해 부자로서의 특권을 배제시키고자 한다거나,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 많은 기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그런 "상투적"인 말들이 여느때와는 달리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들이 직접 그것들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내용을 귀담아 듣기는 했지만, 특히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일에 성공하거나 승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성공을 취한 첫번째 조건이다."라는 취지의 워렌버핏의 발언이었다. 모든일에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실패에도 절치 부심해, 쓸데없이 시간과 정신력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워렌 버핏은 진작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사지 않은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 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것이라고 할수는 없으며 IT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한 일이다라는 말도 했다. 이는 어쩌면 자신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은 인정하며, 자신이 있는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은 아닐까?
아래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찾은 "빌게이츠 & 워렌버핏 학교 가다"이다. 필자 소유의 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동영상이 내려질지 모르겠지만, 유효한 동안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기를 바란다.
빌게이츠와 워렌버핏. 그리고 한명을 더 붙이자면 스티브 잡스까지. 이들은 사회·경제적인 측면이나 기업 경영 성향면에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람들이다. 아마도 앞으로 간간히 블로그에 이들에 대한 내용을 올릴 기회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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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대한 간단한 고찰
대부분의 사람들은 딱히 경계를 나눌 수 없는 일을 명확하게 분류해내길 원한다. 그중에서도 사람의 외모나 성격등을 혈액형으로 구분지어 정의하려는 시도가 가장 대표적이 싶다. 개인적으로 그런 것들을 타당하다거나 탐탁히 여기는 편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비유를 예시로 든 카툰을 발견했기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원본 출처 가기)
사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재미상의 문제이다. 당장 나만해도 A, B, O형의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다.(본인은 사실 O형이다.) 왠만하면 철두철미하게 뭔가를 하고 싶어하지만, 한번 귀차니즘이 발동을 하면 끝을 모르고, 그 일에 마음이 멀어지면 대충 일을 처리하기도 하는 것이다.
자기 변명일지는 모르지만 많은 개발자들이 A형과 O형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싶다. 대다수의 개발자들이 좋게 말해 '꼼꼼하다', 나쁘게 말해 '소심하다'라는 평을 듣는 것은 곧 카툰의 A형 타입이다. 하지만 조그마한 버그가 큰 문제를 일으킬수 있는 S/W를 개발하는 사람들이라면 최대한 버그 발생의 소지을 없애야 하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성격이 아닌가 싶다. 반면 상당수의 개발자는 생각 없이 반복되는 작업에는 진저리를 치며 미루기를 반복하는데, 이것은 O형 타입의 행동 양식이다. 한때 나는 나만 그런 '귀차니즘'에 빠지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다수의 Visual C++ 책을 기술한 김상엽씨의 책에서 그와 유사한 성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책에는 "나는 단 열줄의 코딩으로 해결되는 어려운 문제는 밤을 새며 풀어도 피곤하다 느끼지 않으나, 뻔히 답이 보이는 간단한 문제는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는 요지의 언급이 있었고, 나는 거기서 동질감(?)까지 느꼈었던 것이다.
덧붙이자면 카툰상의 B형 타입 개발자는 개인적으로 피하고 싶다. 특히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는 말이다. 이런식이라면 당장은 어떻게 면피할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모든것을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AB형 타입의 개발자는...... 둘중에 하나일듯 하다. 잘리거나, 혹은 대성하거나. 일을 쉽게 망칠수 있고, 시작하지 않느니만 못한 상황을 만들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해고 대상 1순위지만, 개발 역시도 많은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가히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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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패스워드에 적용되는 강력한 암호체계
최근 보안 분야가 중요시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보안"이라는 분야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보안"이라는 분야는 아무리 잘해야 "제로 섬 게임(Zero-sum game)"이고, 대개의 경우는 "네거티브 섬 게임(Negative-sum game)"이 될수 밖에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특정 시스템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해커들의 행위는 어디서나 "네거티브(Negative)"요소일 수 밖에 없다. 보안 전문가가 그 해커들을 아무리 잘 막는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 뭔가 이득(positive)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결국 보안의 최선은 "제로 섬"이 되는 것이다. 물론 보호하는 정보의 가치와, 누출됐을 때의 손실을 감안해 보안 비용을 산정하지만,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전체적으로 "제로 섬" 이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상은 결코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보안에 손을 댈 수 밖에 없는 것이 나와 같은 개발자의 처지이다. 이번 포스팅에는 모든 보안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사용자 패스워드 만드는 법"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보안을 중시하는 제품에서는 사용자 암호를 반드시 강력한 암호 체계에 맞춰 만들도록 강제하는데, 강력한 암호 체계란 아래 항목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을 말한다.
- 8~16 글자로 구성된 문자열 - 다음 네 종류의 문자 중 세 가지 이상이 동시에 사용된 문자열 :: 대문자 (A B C ...... Z) :: 소문자 (a b c ...... z) :: 숫자 (1 2 3 4 5 6 7 8 9 0) :: 기호 (` ~ ! @ # $ % ^ & * ( ) _ + - = { } | [ ] \ : " ; ' < > ? , . /) - 일반적인 단어 또는 유사한 단어 사용 금지 - 사용자 이름 또는 유사한 이름 사용 금지
"P@ssw0rd"라는 암호를 예로 들어보자. 이 암호는 8~16글자 범위 안에 구성되어 있으며, 대문자∙소문자∙숫자가 혼재되어 강력한 암호 체계를 만족한다. 물론 "Password"라는 단어를 쉽게 연상시킬 수 있는 조합이기 때문에 "매우 적절"하다는 평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어디까지나 여기서는 '예제'로 만든 것이니 만큼, 논외로 하기로 한다.
이런 내용은 이미 다수의 업체나 조직에서 제시한 바 있으며, 여러 제품에도 이미 강제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규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반복적으로 확인하며 적용할 사항이기에 다시 한번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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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박사가 엔지니어에게 보내는 제언(提言)
세상에는 정말로 많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존재한다. IT분야에도 여지 없이 많은 동명이인이 있고, 오늘 그중 한분인 "김명호 박사"님의 인터뷰 내용에 대한 글을 올려보고자 한다. 같은 IT분야 종사자라 해도, 그 사람의 위치에 따라 "김명호 박사"를 서로 다르게 알것이다. 학계, 특히 데이터베이스 분야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KAIST의 김명호 교수를 한번쯤 떠올릴 것이고, 현업 엔지니어 ― 특히 MS 계열의 기술을 사용하는 엔지니어 ― 라면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김명호 상무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성균관대학교의 김명호 교수가 석궁으로 판사를 쏜 사건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더욱 유명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NTO(National Technical Officer) 직함을 가진 후자의 "김명호 박사"의 인터뷰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내가 김명호 박사님을 처음 본 것은 TechED 2002 혹은 TechED 2003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Microsoft Student Ambassador로 초청받아 TechED 강연자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짧게나마 그분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의 초청은 Asia Academic Evangelist인 Kurt와의 인터뷰가 목적이었다.) 물론 그 전에 그분에 관한 얘기는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개발자로 있는 영준이형으로부터 "존경해 마지않는 분"이라 이미 소개 받은 터였고, 어떤일을 어떻게 해 온 분이었는지 역시 전해 들은바 있었다. 이후에도 여러 강연을 통해 그분의 기술에 대한 열정과 그에 걸맞는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인터뷰 동영상은 MSDN 사이트를 뒤적이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인데, 두고 두고 도움이 될만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귀차니즘"을 이겨내고 포스팅 할 가치가 있다 여겨 여기에 소개한다.
이 인터뷰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기술에 대한 학습을 두려워하지 말라 - 기술은 엔지니어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고, 돕기위해 나온다. 2. 기초를 탄탄히 하라 - 기초에 관한 정보를 늘 뒤져보지 않아도 돼야 한다. - 핵심을 파악하고 핵심은 최고의 깊이까지 학습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빠른 실무 적용에 대한 성급함을 이겨내야 한다. 3. 집중해서 학습하라. 4. 남에게 설명하려면 120% 준비하라. 5. IT에 국한된 공부만 하지 마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터뷰 내용이지만, 나태해진 내 스스로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되는 조그만 기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어느샌가 무감각해진 "공부에 대한 자극"을 되불러오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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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나이트] 선악의 경계
게으름은 블로거들의 공통적인 고민이겠지만, 나 역시 어느새 "귀찮음 증후군"에 의해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에 소홀해졌다.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글의 수를 월별로 보면 매달 절반씩 떨어지더니, 심지어는 하나도 없는 달이 속출한 것이 그 부정할수 없는 방증(傍證)일것이다. 게으름에 대한 조금의 경각심과, 생각을 어디엔가 쏟아놓고 싶은 욕구가 만나 다시 포스팅을 시작하려했으나, 수십일간 엉켜버린 생각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낼지 몰라 하던차에, 포스팅을 위해 다운받아 놓았던 "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 포스터를 발견했다. 물론 영화를 본지는 이미 한달하고도 십여일은 거뜬히 지났겠지만, 그 잔영이 너무나 뚜렷해 약간의 부지런함을 발휘해보고자한다.
중·고등학교 윤리시간에 배운 철학 사상들은 너무나 많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기억해낼 만한 것들이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로 대표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이다. 서로 배치(背馳)되는 이 두 철학은 그들 사이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것인가를 결론 짓는것이 어리석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물고 물리는 관계에 있다. 이 안에서 내가 내렸던 어정쩡한 결론은 "인간은 모두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인다"라는 것이다. 약간은 괴변일수도 있는 이 말은 표면적으로 볼때 성악설에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화해서 양단을 두동강내기에는 생각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먼저 욕망이라는 말 자체도 그 의미가 조금은 모호하다. 사전적으로 봤을때 욕망은 두가지 한자로 씌여진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인 욕망(欲望)'과 '무엇인가를 탐하고자 하는 마음인 욕망(慾望)' 다시한번 괴변을 늘어놓자면 그 두가지 욕망은 결국 같은 것이다.
선(善)을 행하는 사람이라 칭해질 수 있는 자원봉사자를 예로 들어보자. 그를 걷으로 보기에는 자신의 욕심은 없이 남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조금만 더 깊게 보면 그는 '남을 돕는 행위'에서 만족을 느끼고, 그는 본능적으로 그 만족을 취하고자 하는 "욕망"에 '자원봉사'라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사람까지도, 남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에 보다 많은 만족을 느낄수 있기에 그런 행동을 할수 있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악(惡)을 행하는 사람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개인적 탐욕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행위를 한다. 어쩌면 성선이던 성악이던 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기본적으로 욕망을 따라 움직인다'라는 기본을 깔고, 어떤 욕망을 취하느냐하는 것이 본성이냐를 따지는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누구나 기본적으로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욕망이 있고, 또 그 욕망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닐까 한다.
"다크나이트"에서는 그 선악의 경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다크나이트라는 영화가 워낙 큰 인기를 얻다보니, 그 즈음에 포스팅되었던 많은 글에서 원작 "배트맨"을 분석하거나 리뷰했다. 그중에 먼저 상기했으면 하는 내용이 왜 배트맨이 배트맨이 되었고, 조커가 왜 조커가 되었느냐하는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배트맨은 폭력앞에서 죽어간 부모의 원한을 갚기위해 '정의'라는 편에 섰고, 조커는 사랑하는 아내의 어이없는 죽음이 계기가 돼 인격 장애가 생겼고, 그것이 그를 '악'이라는 편에 서게 했다. 결론적으로 배트맨과 조커는 각각 "절대선"과 "절대악"을 대표하지만, 그들의 변화과정을 전체적으로 지켜봤을 때, 과연 그들을 "절대선"이라 무조건 영웅시하고, "절대악"이라 무조건 비난할 수 있겠는가? 사실 이들의 경계를 "다크나이트"라는 영화안에서 연결시켜주는 인물이 '하비 던트'이다. 정의의 수호자가 개인적 좌절에 의해 어떻게 악인의 하나인 '투페이스'로 변해 가는지. 물론 그 변화에 대한 진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나의 기준으로는 그를 "악한(惡漢)"으로 무조건 비난만 할 수 없는, 불쌍한 인물이었다.
어쩌면 인간 두뇌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명확한 것을 좋아한다. 흔히들 "흑백논리"라 부르고 비판하는 판단들이 우리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선-악', '적(適)-아(我)', '참-거짓' 심지어 우리가 첨단이라 부르는 '디지털'이라는 단어 자체도 연속적인 것을 연속적이지 않은것으로 재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악인이 개과천선하여 절대 선인이 될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또 적이었던 사람이 친구가 될수도 있고, 그가 다시 적이 될 수도 있다. 이는 모두 사람 개개인이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기본 성향은 같지만, 어떤 욕망을 택하는지에 대한 성향이 능동적으로 바뀔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다크나이트는 배트맨과 조커, 투페이스를 통해 선악의 경계와 그 모호함. 그리고 가변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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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장시키는 50가지 대화법
인터넷을 떠돌다보면 우연히 얻게되는 유용한 정보나 좋은 글귀들이 있게 마련이다. 오늘도 점심식사 후, 잠시의 웹서핑 중 한가지 글을 보게 되었다. "나를 성장시키는 50가지 대화법"이 그것이다. 사실 나는 평소에 말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곤 했다. 눈썹이 진한 인상 때문인지, 목소리가 강해서인지, 혹은 어투가 그런것인지, 상대방이 나의 말을 의도에 비해 다소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소개하는 대화법이 아주 간단하고 단순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평소에 새겨야 할 지침들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