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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데우다/내가 쓴 글'에 해당하는 글(6)
2008/11/11   [시] 시인에게 -자조(自嘲)
2008/11/06   [시] 태양(太陽)의 연인(戀人) - 낙엽
2008/05/04   [단편] 눈물과 거울
2008/04/19   [시] 철길 위에서
2008/03/24   [시] 모정(母情)
2008/03/21   [시] 고향이 그리운 사람들


[시] 시인에게 -자조(自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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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를 한번 어루어 볼 때이다"


나의 어린 한마디 말은
나만의 가슴앓이가 아니어야 한다
그것은 그저 흔하디 흔한 연애질이 아닌
단정한 사랑

짧은 너댓줄의 말에 나는 흐뭇하게 초라하다
그리고 다시
짧고 진하게 빗속의 바람을 마셔도 나는
아직 건조하다

"지금쯤 나를 한번 짓밟아 볼 때이다"

나무 그늘아래,
허기진 고개를 떨군 들풀을 찾는
그 바람에의 기꺼운 입마춤

때로 외진 곳에서 운명 지어진
절규를 들어야 한다면
기꺼이 그 눈물로 되어야한다

혼돈의 사슬을 박차고 일어나
이제는 나를 향해
조용히 울부짖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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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시인에게, 자작시, 자조


[시] 태양(太陽)의 연인(戀人) -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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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언제나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당신을 향한 뜨거운 사랑은
빨강게 빨갛게 불타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다려야
당신의 곁에 갈 수 있을까요
소름끼치도록 아스라한 거리에서
한발짝도 당신께 다가서지 못하고
춥고 고독한 이 들판에
서 있을 뿐입니다

이제 당신은
한 계절의 여행을 떠나십니다.
그리고
서서히 자취를 감추어가는 당신을 따라
나는
가을비 찬비에 젖어
선홍빛으로
뚝뚝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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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가을, 낙엽, , 자작시, 태양의 연인


[단편] 눈물과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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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스님이 하루를 정리하려 합장한 채 법문을 외고 있을 때였다.
전화벨소리.
밤 공기에 울려 유난히도 날카롭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모두가 잠든 시각인지라, 무진스님이 직접 수화기를 들었다. 덕암사의 자혜스님이었다.

"무진이냐?"
"자혜스님 아니십니까?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 이시온지?"
"무진아, 놀라지 말거라. 혜원스님이 쓰러지셨단다. 지병이 도지신 게야. 혜원스님께서 보고 싶어하시니 빨리 내려오거라."

급박하면서도 감정이 절제된 목소리. 무진스님은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무진은 그의 법명이었다.
그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어렸을 때 덕암사에 버려지다시피 했을 때부터였다. 그의 어머니가 강보에 쌓인 그를 데리고 시주를 하러 왔다가 돌아간 이후 그는 이 덕암사의 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그런 감정은 없었다. 어머니라는 사람의 얼굴은 전혀 알 길이 없었기에. 단지 학교에서 어머니, 아버지 얘기가 나올 때, 그래 그때만 번민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도……

당시 30대 중반의 나이였던 혜원스님은 무진을 고아원으로 보내자는 다른 스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혜원스님 자신이 키우겠다고 우겨서 절에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아들 겸 그리고 시동 겸 그에게 법명을 지어 주고, 입히고, 씻겨 가며 그를 키워 주었다. 말하자면 어머니 대신, 아들 대신의 관계로 둘은 서로 마음을 의지해 가며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여러 해 전에 얻은 불치의 병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아 오더니, 급기야 또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튿날 아침, 이른 시각이었는데도 주말 인파로 인해 역은 몹시 붐비고 있었다.
어느새 서늘해진 바람 탓인지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쌍쌍이 모여 있는 이들은 서로의 죽지로 파고들며 온기를 부비고 있었다. 다행히 좌석표를 마련해서 열차 칸에 몸을 묻으니, 차창에 빼꼼한 아침 햇살이 얼굴에 내린다.
계절 탓일까. 청명하다 못해 거울 같은 아침 하늘이 유난히 높아 보인다.

흔들리는 차창밖에는 산사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가을이 한가득 이었다. 서서히 계절이 바꿔입는 초록 것들의 부산한 몸놀림과 살찌워 가는 열매들. 누렇게 일렁이는 들판은 보는 것만으로도 풍성함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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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들려오는 아이의 칭얼거림.
이른 잠을 도둑맞은 데 대한 투정인가 보다. 무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아이의 입에는 엄마의 젖가슴이 한가득. 무진은 순간 무엇인지 모를 번뇌에 젖어 든다.

어머니.
그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전혀 없다는 것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막연한 목마름과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해 저물녘의 산사는 몹시도 외롭다. 하늘에 걸려 있는 구름 한 조각에도 그리움이라는, 실체도 없는 눈물을 적셔 두고, 마냥 속세를 찾아드는 것이 산사 사람들의 외로움이다. 하물며 무진에게서야 더하면 더했지 덜할 리는 없는 것이 그런 막연한 그리움이다. 적어도 그 막연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것이라면, 무진의 전제는 거짓일 것이다.

어머니…….
그것이 다만 따스함이라든가, 부드러움이라든가, 다정한 보살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그렇다면 무진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질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진정 어머니란 의미가 그것뿐이라면 혜원스님은 그 모두를 주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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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내리니, 낯익은 풍경이 무진에게 치닫는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자신이 자란 곳에 대한 감정이란 참으로 묘했다. 마냥 반기며 안기자니 과거의 그늘들이 그를 밀어내고, 마냥 미워하자니 왠지 못할 짓 하는 것 같은 죄의식을 수반하는 그런 감정 말이다.
산사에 오르는 길목에 다다르자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었다. 들려오는 새소리와 구수한 초목의 내음도 정겹기 그지없다. 혜원스님과 수도 없이 오르내린 이 길. 모든 것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그 모습 그대로인데, 사람만 저만큼 서둘러 내달려 온 듯싶다. 하찮은 돌 하나, 보잘것없는 저 잡초들보다 인간이 더 쉽게 죽고, 쉽게 잊혀진다는 사실이 무진에게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케 한다.

산사에 들어서니, 씻은 듯한 마당엔 인기척도 없이 향내음만 가득하다.
법당에 합장하고, 서둘러 혜원스님의 숙소로 뛰어들어갔다. 방안에 가득 맺힌 혜원스님을 위한 염불소리. 급히 꿇어앉아 큰절을 올리고 나서 혜원스님을 뵈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스님…… 저 무진입니다……."
"밤새 열반의 고비를 넘기시려다가도 너를 보아야 하신다고 저렇게 계셨단다."

밀랍으로 빚은 것 같이 얼굴에 핏기라곤 없었다. 왠지 섬뜩했지만, 그것은 두려움을 비추어 주는 그런 표정은 될 수 없었다. 그 얼굴에는 미움과 한이 인내로 여과된 후의 투명함이 깃들어 있었다.
생사의 고통과 슬픔을 뛰어넘어 받아들인 자의 숭고함과 겸손함. 한 여자, 한 아내, 한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아닌 이제 비로소 불자의 본모습을 지니고 누워 있었다.

"무진아, 혜원스님도 어려서 부모를 잃으셨단다. 고아원에서 참으로 어렵게 자라신 게지. 그렇게 어렵게 자라서는 결혼을 하셨더랬지. 하지만 아이가 병으로 죽자 혜원스님 부부도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고, 스님은 남편의 새 삶을 위해 이혼과 함께 불교에 귀의하신 게야."

간혹 무진이 흔들릴 때 자혜스님이 해주시던 말씀이다. 어쩌면 무진에 대한 애착과 사랑은 잃은 자식에 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불심이 둘 사이에 맺어 준 인연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들로…….

스님은 손끝의 느낌만으로도 무진을 알아보시고는 잠깐 눈을 떴다. 무진을 바라보는 눈 속에는 반가움과 안타까움이 깃들여 있었다. 이대로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니. 떠나려는 자와 붙잡으려는 자의 안타까운 정적…….
혜원스님은 손짓으로 모두 물러가라 이르고는, 무진을 불러 앉히셨다.

"무진아, 어머니를 용서해 드려라 ……."

고인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더니, 둘의 모아진 손위로 떨어졌다. 간신히 남아 있는 손의 온기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둘 사이에 놓인 과거의 강이 추억을 반주한다.

"너의 어머니는 뜻밖의 사고로 너를 갖게 되셨다더구나. 미혼모였던게지……. 생명을 지우지 못해 힘들어 하다가 너를 낳고 만 게야. 그래……. 너의 어머니는 살려고 무던 애를 썼지만, 여자 홀몸으로 그게 몹시 힘드셨던 게야. 외가에 힘을 빌 수도 없는 일이고……. 못할 짓인 줄 알면서도 그래도 밥이야 먹여 주겠거니 하는 심정으로 널 이 절로 데리고 오셨다더구나. 그리고는 애 하나 딸린 홀아비와 결혼을 하셨더랬지. 기회를 봐서 널 데려가려고 몹시도 애를 썼지만, 시부모의 눈치 때문에 그렇게 하질 못하셨던게야. 시부모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넌 이미 너무 커버렸고, 자신의 죄가 무서웠기 때문에 네 앞에 나서지를 못하셨던 거지. 그러던 중 바로 얼마 전에 남편이 돌아가셨지. 하나 있던 배다른 아들은 결혼해서 미국으로 나가고, 혼자 고민하다가 얼마 전에 나에게 연락이 닿았구나. 몹시 힘드셨을 게야. 알리지 말라고 하셨지만, 그건 나의 도리가 아닐 것 같아서 너에게 말하는 것이란다. 이제 너도 다 컸으니, 어머니를 어머니로서만 보지 말고, 그 어머니로서의 고통과 한 여인으로서의 삶도 되돌아보려무나. 무진아……."

스님의 한기가 무진에게 옮겨진 때문일까. 갑자기 소름이 끼치면서 전신의 오감이 굳어 버린 느낌이었다. 손에 쥐어진 혜원스님의 손도, 자신의 볼에 흐르던 눈물의 느낌도, 온 방안에 가득하던 향내도, 모든 것이 무진에게서 저만큼 나앉았다.

"도대체……,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온지……, 스님? 스님!"

바람이 한줄기 훑고 지나가는지, 떨어진 낙엽이 뒹구는 소리가 들렸다.

혜원스님의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졌다.
과장을 싫어하는 성품이었는데, 가는 길 역시 유언대로 간소하게 받들어졌다. 스스로 보여줌으로써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모든 사람이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생전의 그녀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간소하게 한다 해도 많은 불자들이 모여, 가는 길을 애도해 주었으며, 다비식이 있는 날에는 사찰을 중심으로 조문객이 산을 이루었다.
무진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그렇게 완전히 혼자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조의를 표하며 무진을 위로하려 했지만, 세상에 또 한번 버려진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이제까지 무진을 지탱해 주던 이승과의 마지막 끈마저 다비식의 연기 속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무진에게는 또다시 자신에게 내던져진 매듭을 풀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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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가 끝난 후 혜원스님의 유품 몇 가지를 정리해 챙겨들고는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평소 혜원스님과 가까이 지내던 자혜스님이 무진을 불렀다.

"무진아, 혜원스님께서 열반의 길에 오르시기 전에 이걸 네게 전해 달라고 맡기셨단다."

자혜스님은 봉투 하나를 건네었다. 그곳에는 서울 어느 곳인가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혹시 어머니의 주소가 아닌가?'

아무리 표정을 정리하려 애써도 갑자기 밀려오는 두려움과 애증의 감정을 누르기가 몹시 힘들었다. 혜원스님의 열반으로 슬픔에 잠겨 있는 이때, 그것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어야 했다. 어머니로서의 가치를 지닌 존재는 이미 이승에서 떠난 이후가 아닌가. 하지만 무진은 몹시 혼란에 빠지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돌아와서도 자꾸만 흔들리는 자신을 몹시 다그쳐야 했다. 혜원스님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이면에는 생모에 대한 그것들도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를 용서해라 …….'

용서라는 말. 그것이 과연 지금의 무진과 생모와의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적당한 말인가. 적어도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어떤 감정이 있었어야 가능한 말이다. 그런데 과연 둘 사이에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으며, 어떤 감정이 존재하고 있었는가 말이다.
부처님을 대하면서도, 불경을 외우면서도, 무진은 자꾸만 다가와서 자신을 두드리는 번뇌의 손길을 느꼈다. 자세가 흐트러지고 표정이 무너지고 감정의 절제가 힘들었다.

예전의 신실한 불자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이긴 했다. 혜원스님의 유언을 받든다는 의미에서건, 생모이므로 한번은 만나 봐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에서건 어떻든 해결해야 할 일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래, 부딪쳐봐야 할 일이었다.

'어떤 관계로 만나야 하는 건가? 불자와 신도? 젊은이와 한 노인?'

이런 관계라면 이렇게까지 만나기를 꺼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아들…… 한 어머니의 아들로서 만나는 것이므로 이렇게 힘든 것이다. 이제까지의 감정이 미움이었건 사랑이었건, 무관심을 가장한 그리움이었건 간에 적어도 무진을 낳아 준 어머니인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그 동네 입구를 걸어 올라가면서도 무진은 몇 번이나 발길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후에 찾아올 더 큰 혼란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그래, 어떻게 생겼는지 만 보고 가자. 집이 어디쯤인지만 보고 가자…….'

이렇게 자신을 달래면서 종이에 적힌 주소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내가 절간에서 생활한 지 40여 년. 아마 60에 가깝겠지……. 나와 비슷하다면 키가 큰 편은 아닐 게야. 몸은 뚱뚱한 편일까 아니면 마른 편일까?'

주소와 일치하는 곳에 다다랐다. 좁은 뜰 안에는 대추나무, 감나무, 사과나무가 가득하고 오래된 듯한 창문에는 이른 철인데도 겨울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서울 아무 곳에서나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이런 집안에 무진을 낳아주신, 그러나 무진을 버렸던, 무진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어머니가 지금 저 초록색 철문 안에 계신 것이다. 보고 싶을 땐 언제나 볼 수 있는 저런 평범한 집안에 무진의 그리움의 상이 실체가 되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철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진은 당황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던 길을 가는 척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 누군가 나오는 듯한 소리. 다시 문이 닫히는 소리……'

그 모든 소리를 뒷전에 밀어 두며 무진은 점점 더 멀리 걸었다. 마침 골목 모퉁이가 나오기에 그리로 재빨리 몸을 돌려세웠다. 꺾어진 모서리 담 귀퉁이에 몸을 기대고는 큰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되돌아온 집 방향을 훔쳐보았다. 저기 얼마쯤의 거리에 60즘 되어 보이는 한 노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희어지기 시작한 머리와 어딘지 모르게 허물어 내리기 시작한 체구를 가진 평범해 보이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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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은 다시 방향을 돌려 아까의 그 집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주 오는 어머니를 좀더 자세히 보기 위해, 혹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치기 위해……
길을 가던 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합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는 인사를 했다. 무진은 당황스럽지만 본능적으로 같이 합장한 채 인사를 하고는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그 노인 역시 눈을 들어 무진을 보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 시간의 흐름도 멈추었다. 거울 앞의 상과 실체와 같아 닮아 있는 두 사람의 눈 속에 서로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순간, 무진은 숨막힐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 얼굴은 어린 무진을 버린 증오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얼굴이었다. 삶의 고통을 인내한 후의 편안함과 투명함. 자신의 삶을 희롱 당한 것이 아닌, 다만 운명에 따라 살아왔을 분인, 한 사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무진을 바라보던 인자하고 따스하던 눈빛, 한평생 무진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바로 그 모습. 무진의 이슬 맺힌 거울에는 혜원스님 그대로의 모습이 깃들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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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눈물과 거울, 단편소설, 자작소설


[시] 철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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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앞으로만 내달리는 평행선에서
만나고파 지평선 향해 달리는
두 줄기 - 철의 심(心)

차갑게 휘감아 도는
그리움의 소용돌이는
멀리선 애송의 가지에
안타까운 침잠만을 거듭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가
너는 어디에 있는가
너는 왜 나에게 오지 않는가“

아무리 외치고 달래어 봐도 돌아오지 않는 너는
그저 거기 서있는 환영일 뿐인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할 그림자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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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 자작시, 철길


[시] 모정(母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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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붉은지 하늘이 붉은지
붉게 타다 남은
반쪽짜리 태양의 침몰인지
장독대 위
노란 감잎이 타고
아베 그리는 울 할머니
그 마른 얼굴 검버섯도 탄다

몸도 붉고 마음도 붉은
붉은 저녁날
하늘 언저리 여명은
지름길로 훠이훠이 달음질 치고
사립밖 서성이다
놀에 젖은 할머니는
언덕 넘는
희뿌연 그림자 드리울 때
서둘러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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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 어머니, 자작시, 할머니


[시] 고향이 그리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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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슬픔으로
푸른 밤을 괴고 있는
든든한 주춧돌 위에
시리게 눈물겨운 정적의 빛

달빛이 눈시울에 고이는 날에는
밤이 푸르다.

산넘어 뛰어온 긴 여정은 쉴 곳 없고
미칠 듯 가고파도 돌아갈 길이 없어
추억을 지새우며 타향땅에 서 있다

내 눈빛 영글어가던 언덕배기 골짜기엔
지금도 까투리는 울어대고 있는지,
뿌연한 연기 속에 가슴을 적시우고
마아냥 향기로왔던 그 시절이 그립다.

시리게 눈물겨운 밤의 언저리,
눈시울에 별빛 맻힌 날에는
밤이 푸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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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고향, , 자작시,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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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산을 오르는 이유는 산 만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고 산 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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