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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늘어놓다/세상 이야기'에 해당하는 글(7)
2008/11/10   명품 CEO의 8대 조건
2008/10/29   성공을 위한 첫번째 조건
2008/07/02   황장엽이 바라보는 "촛불 독재" (1)
2008/06/01   나는 더이상 인터넷을, 그리고 언론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
2008/05/28   국산 소고기는 과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 것일까?
2008/05/04   [워런 버핏] 누군가에게 믿음을 얻어야 한다면 이 정도는......
2008/04/20   [홍정욱] "난 져본 적이 없다"


명품 CEO의 8대 조건
이전의 포스팅에서도 잠깐 언급한적이 있지만, 유명한 CEO들과 그들에 성향에 대해 약간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재물'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나의 '속됨'을 증명하는 것인지, 그들의 사회적 성공을 동경하는 자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싸이에 있는 미니홈피(http://cyworld.com/bluesn)와 블로그(http://maverick.xtorm.net)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로 블로그를 활용하되, 미니홈피는 말 그대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쓰는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블로그에 올리기는 조금 껄쩍지근한 글들을 올리는데 사용하기 위해서다. 미니홈피를 정리하던 중, 그곳에 스크랩해뒀던 유명 CEO관련 기사중 다시봐도 흥미로운 것이 있어 다시 여기에 포스팅을 하고자 한다.

성공한 CEO들의 성향을 분석한 것인데, 별다른 첨언이 없더라도 있는 그대로가 우리에게 도움될만한 기사가 아닌가 한다.

아래는 관련 기사 전문이다. (매일경제 박유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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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가졌지만 피오리나가 가지지 못한 것은?'
 
칼리 피오리나는 휴렛패커드 최고경영자(CEO)로 재직하면서 괜찮은 경영자로 불렸다. 하지만 컴팩 인수에 대한 책임과 실적 부진으로 명품 CEO가 되지는 못했다. 반면 잭 웰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은 탁월한 기업 실적과 함께 직원들의 신망까지 얻으면서 명품 CEO가 됐다.
 
LG경제연구원이 24일 '명품 CEO의 조건' 보고서를 통해 명품 CEO가 되기 위한 조건을 8개 항목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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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견지명
미래를 한발 앞서 예측해 준비하고 적응할 수 있는 선도력이 필요하다. 경영자는 큰 눈으로 비전을 보고 입체적으로 사고해야 하며 동물적 감각과 직관으로 판단하고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2. 창의성
경영자의 창의적 능력은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힘이다.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대표적이다. 그는 평소 새로운 것을 중시하며, 기술보다는 디자인과 창의성을 강조했다.
 
3. 용병술
아무리 슈퍼맨 같은 CEO라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다할 수 없다. 빼어난 인재를 선별해 내고 이들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용병술을 겸비해야 한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라는 경영 천재를 삼고초려를 통해 자신의 오른팔로 만들었다.
 
4. 인간미
경영자에게 있어 진정한 인간미는 따뜻하고 순수한 가슴으로 구성원들을 감싸 안아주는 배려를 뜻한다. 구성원들을 긍정의 힘으로 변하게 하는 칭찬, 경영자에 대한 깊은 신뢰와 존경심을 형성하는 겸손 등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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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배움에 대한 열정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경영자가 공부를 게을리하면 회사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월마트 설립자 샘 월튼은 현장을 순회하며 직원들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며,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는 현장 구성원들이 작성한 생생한 제안서를 읽으면서 학습의 시간을 가졌다.
 
6. 넘치는 활력과 정력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CEO는 쏟아지는 스트레스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7. 정직한 품성과 도덕성
경영자는 한치 흐트러짐 없이 정도를 걸어야 한다. 정직한 품성과 도덕성을 갖추는 것은 존경받는 경영자의 근간이다.
 
8. 사회적 책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장기적으로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 경영자도 지도층에게 요구되는 솔선수범과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이행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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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CEO, 빌게이츠, 스티브잡스, 잭웰치, 조건


성공을 위한 첫번째 조건

빌게이츠와 워렌버핏은 25살이라는 적지 않는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다양한 면에 대해 소통하면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특히 크게 성공한 재력가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점에서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도 유명해 많은 이들의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주말 저녁, 특별히 할일 없이 "리모컨 운전"을 하다가 "빌게이츠 & 워렌버핏 학교 가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빌게이츠와 워렌 버핏이라는 세계적인 두 거부(巨富)가 버핏의 모교인 네브라스 링컨대학을 찾아 학생들과 질의·응답 하는 내용을 녹화한 것이다. 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했던, 혹은 그들이 성공하는데 밑바탕이 되었던 인생의 철학들을 학생들에게 전달한다는 취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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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들에게 학생들은 경제, 사회, 인생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질문을 던졌는데, 대강의 질문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사회적 성공을 위한 방법
- 세계 경제의 흐름
- 부자들의 자녀 교육법
- 부유한 자들의 사회적 책임(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

사실 이들에 대한 대답은 매우 간단했고, 심지어는 상투적이기까지 했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인간 관계를 넓히고 화술(話術)을 익혀야 한다던가, 중국의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해질 것이라던가, 자녀들을 올바로 키우기 위해 부자로서의 특권을 배제시키고자 한다거나, 부자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 많은 기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그런 "상투적"인 말들이 여느때와는 달리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들이 직접 그것들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내용을 귀담아 듣기는 했지만, 특히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일에 성공하거나 승리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성공을 취한 첫번째 조건이다."라는 취지의 워렌버핏의 발언이었다. 모든일에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소한 실패에도 절치 부심해, 쓸데없이 시간과 정신력을 낭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아니지만, 워렌 버핏은 진작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사지 않은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 할 수 있지만, 결정적인 것이라고 할수는 없으며 IT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잘한 일이다라는 말도 했다. 이는 어쩌면 자신의 강점을 살리고, 약점은 인정하며, 자신이 있는 그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것은 아닐까?

아래의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찾은 "빌게이츠 & 워렌버핏 학교 가다"이다. 필자 소유의 영상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 동영상이 내려질지 모르겠지만, 유효한 동안만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기를 바란다.



빌게이츠와 워렌버핏. 그리고 한명을 더 붙이자면 스티브 잡스까지. 이들은 사회·경제적인 측면이나 기업 경영 성향면에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사람들이다. 아마도 앞으로 간간히 블로그에 이들에 대한 내용을 올릴 기회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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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이 바라보는 "촛불 독재"

내가 기억하는 첫 촛불 시위는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효순이 미순이 사건"이었다. 그 사건에서의 촛불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두 어린 혼(魂)을 위로하는 의미였고,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진행된 '미군당국과 미온적인 정부'에 대한 항의였다. 물론 일부 강경한 시민단체 ― 시민단체 본연의 의미를 돌이켜보면, 폭력성을 띄는 단체까지 시민단체라 칭하기 부끄럽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 시민단체라 칭하고 언론에서 역시 그렇게 칭해줌으로 여기서는 잠깐 그 표현만을 빌도록 하겠다 ― 에서는 무력행사도 불사했으나 그들은 그 촛불에 동화될 성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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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의 어떤것이던 그 것은 변질되기 나름이라했던가? 그 촛불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도 변화해왔다. 어린 혼을 위로했던 촛불 시위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정치적 사건을 계기로 정치색을 입더니, 이제 와서는 특정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민주주의'라는 말을 쓰기 좋아하는 집단에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아마 그들은 애초에 그 촛불이 가졌던 '순수'와 '평화'의 이미지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익'과 '잠재된 폭력성'을 숨기려 했을런지도 모른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촛불 시위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갔다.
물론 정부가 미국과 졸속으로 협상을 마친 후, 평화적으로 시작됐던 시위였지만, 점차 그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익명성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중심이되어 시작된 것인만큼 어느정도의 변질은 예상됐던 바이다. "평화"와 "애도"를 상징하는 촛불은 미국과의 다소 "굴욕적"인 협상을 "애도"하듯 하나둘 켜져갔으나, 군중심리에 의해 촛불을 든 사람들은 거리로 나갔고, 그 시위대는 청와대로 행진했다.
사실 "문화 집회" 혹은 "문화 행사"로 이뤄졌던 초기의 시위는 매우 바람직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국민 모두에게 협상 내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정치적으로 정부에 압박을 줄수 있는 카드였다. 이는 보다 현실적으로 협상 내용을 보완해 가는 계기가 될 수 있고, 또한 정부 입장에서도 대미 협상을 하는 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힘"이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집회가 길거리로 나오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가 청와대로의 행진을 시작했고, 군중들은 군중심리의 지배를 받아 모두 그리로 향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권의 대표적인 상징인 만큼,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이 그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일종의 '직무 유기'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위대는 그들의 행진을 가로막는 공권력에 대항했고, 폭력이 오고가는 상황에 이르러버렸다.
한번 생각해보자. 시위대를 막지 않아 그들이 청와대에 이르고, 그들이 청와대의 담을 넘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들이 경호 시설 안에 무단 침입했으므로 사살(死殺)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을 방치해 국가 통수권자가 시위대에게 봉변을 당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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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의 정부로서는 강경하게나마 그 시위를 진압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위대가 주장하고 있는 "협상 완전 무효"는 외교 관례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혹여 "대한민국"이 전복되고, 새로운 국가가 "개국(開國)"된다면 또 모를일이다. 지금 현재의 정부로서는 애초의 협상이 '졸속'이었음을 시인하고, 꾸준한 추가 협상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한 후, 석고대죄(席藁待罪)하는 자세로 남은 사안들을 헤쳐나가는 것이 최선이며, 유일한 길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위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실현시키기를 원하며, 공권력에 폭력적인 대응을 하고 있기에, 정부로서는 사회안정을 위해 강경진압이라는 무리수를 선택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늦게나마 옳은 방향으로 외교적인 문제를 진행시켜 나가고 있으며, 종교계가 나서서 폭력적으로 변질되어버린 시위를 원 위치로 돌려 놓고 있다는 점이다.

혹시 시위에 참여하는 대중들은 중학교 즈음 사회 교과서에 나왔던 내용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 내각제의 장단점을 말이다. 대통령 중심제는 대통령 임기중 국정이 안정되는 반면, 지도자의 소신이 국민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민의가 즉각 반영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의원 내각제는 민의가 비교적 빠르게 정책에 반영된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국정이 안정되지 못하고 님비(NIMBY)현상의 영향으로 지도자가 소신있는 정책을 펼쳐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는 내용이다.
어찌됐던 우리는 그런 장단을 고려해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통령 중심제를 유지하고 있고, 현재의 우리 대통령도 우리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선출한 사람이다. 우리 손으로 우리의 권리를 위임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어떤 과오를 범하더라도 우리도 거기에 일말의 책임을 나눠야 한다. 물론 그가 우리의 뜻을 거스를 경우, 그에 대해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합법"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혹자는 "대통령 뽑을 사람 없어서 투표 안했다"면서 대통령의 과오를 함께 나눌 책임에서 발을 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 할수 있는 변명이 아니라, "나는 정치나 정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만 선거에 나왔을 경우 투표권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과 사상을 대표할 인물을 찾아내고 지지하는 것으로 그 권리를 행사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점은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무이기도 하기에, 상기와 같은 "핑계"는 적합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대통령을 옹호하는 듯한 나 역시도,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는 않았다. 대표적으로 "대운하 사업"이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고, 단기적 성과 위주의 업무 스타일도 우려됐기 때문이다. 물론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의 선택을 했다. 하지만 작금의 정치적 상황들은 우리가 가야 할 정도(正道)에서 한참 어긋나 있다 느껴지기에 이런 글을 남겨본다.

이런 시점에 북한 고위 인사 출신 탈북자인 황장엽씨의 인터뷰 기사가 나와 여기에 같이 소개해보고자 한다. 부분부분 나도 약간은 갸웃하게 되는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나, 북을 대하는 태도에 던지는 따끔한 한 마디는 나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한다.
이 기사에는 "황장엽 씨는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민주주의를 찾아 온분이다 그분말에 백프로 공감" 이라는 댓글과 "황장엽씨 눈에는 기본권행사하는 모습이 무질서로 보이는 모양이져?^^"라는 약간은 비아냥스러운 댓글에 많은 사람들이 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엄밀히는 촛불 시위가 도로로 나서는 순간부터, 그보다는 약간 관대하게 봐서도 촛불 시위대가 청와대를 향해 이동하면서 부터, 그리고 아무리 관대하게 본다해도 그들 손에 파이프가 들리고, 경찰에 손상을 입히면서부터 그들은 스스로의 기본권을 포기하고, 스스로가 폭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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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관련 인터뷰 기사의 전문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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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고위급 인사로 활동하다 지난 1997년 대한민국으로 전격 망명했던 황장엽씨가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를 ‘대중독재’, ‘촛불독재’ 등으로 표현해 논란이 예상된다.

황씨는 2일 과격 촛불집회 반대 시민연대 측에 격려 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를 통해 황씨는 연일 이어지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와 시위참가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황씨는 “지금 광화문 거리는 이전의 자유민주주의 네거리가 아닙니다. 쇠파이프, 고함, 파괴, 불을 든 사람들, 그 어떤 질서나 법도 통하지 않는 무법의 사각지대로 변했습니다”라며 폭력이 수반되는 시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그는 촛불시위 참가자들과 미국산 쇠고기 관련 일부 방송사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독재’란 표현을 사용했다.

황씨는 “지금 우리 한반도에는 두개의 독재가 있습니다. 북한의 독재는 반항의 씨를 말리는 3대 멸족제도, 즉 김정일이가 온갖 전횡을 일삼는 국가독재이고 남한은 좌익들의 선동에 넘어간 시위자들로 하여 ‘대중독재’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며 “두 제도를 체험한 저의 눈으로 보면 북한의 ‘권력독재’와 남한의 ‘촛불독재’가 신통히도 비슷합니다”라고 말했다.

연일 이어지고 있는 촛불시위가 순수한 시민들이 아닌 이른바 진보세력이 주도하고 있으며, 이는 국방위원회라는 정부 지휘에 의해 형성된 독재권력과 비슷하다는 주장이다.

일부 방송사와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를 북한의 ‘선전부’와 빗대기도 했다.

그는 “독재권력을 합리화하는 조선노동당 선전부의 선동기술에 못지않게 대중독재를 부추기는 KBS, MBC 방송국도 있습니다. 북한에는 독재권력에 의해 정치범 수용소가 있고 온갖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면 남한에는 인간의 존엄을 매장하는 인터넷 아고라 수용소가 있고 촛불시위자들이 감행하는 인민재판과 신문, 광고주 죽이기, 온갖 폭행과 파괴들이 있습니다”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혔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성숙된 시민민주주의란 요구와 합의의 과정이 되어야지 끝장내겠다는 결론주의로 전락할 때에는 불법적이고 폭력적일 수밖에 없습니다”라며 “더욱이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는 남한의 것만이 아니라 북한에도 가져가야 할 민족공동의 이념이며 자산이기도 합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사랑하고 배우려했던 자유민주주의는 촛불시위자들이 보여주는 폭력의 자유도 불법의 민주주의도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당신들이 진정 삶의 권리와 정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왜 북한인권을 위해 지금껏 촛불을 들지 않았습니까. 당신들이 정말 민주주의 국민이라면 왜 지금껏 김정일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시위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까”라며 북한의 열악한 인권 현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며 메시지를 마쳤다.

황장엽씨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총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북한의 권력 실세 중 한 명이었으며 1997년 대한민국으로 망명했다. 현재는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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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촛불시위, 황장엽


나는 더이상 인터넷을, 그리고 언론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세간에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을 유언비어(流言蜚語)라 한다. 이런 유언비어가 떠돌게 되는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하나는 정치적 폭력에 의해 언로(言路)가 막혀 있을 경우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정당성을 공적(公的)으로 확보하지 못한 집단 또는 개인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공격하는 비열한 수단인 경우이다. 하지만 그 어느 편도 내용의 진실성보다는 퍼트린 자 또는 조작한 자의 주관과 목적에 더 충실하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정의감에 의해서든, 사적(私的)인 이익을 위해서든, 또는 정치적 폭력이 두려워서이건, 자기를 드러내면 금세 그 목적이 탄로날까 두려워서이건, 그 근원이 뚜렷하지 않은 이상 진실 여부에 대한 토론이나 비판이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듣는 사람이 좀 이상하게 느껴져도 전하는 사람 또한 '들었을 뿐'이기 때문에 따져 물을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슬기로운 사람은 유언비어를 들어도 전하지 않는다. 진실은 확인할 길이 없고, 꾸며댄 자나 퍼뜨린 자의 주관과 목적만 되풀이 강조되는 그런 종유의 뜬소문을 다시 전하는 것은, 잘해야 용기 없는 정의(正義)의 주관(主觀)에 뇌동(雷動)하는 것이 되고, 자칫하면 악당을 쓰러뜨리기 위한 다른 악당의 계교를 도와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민중들에게 생각 밖으로 위력적인 것이 또한 유언비어이다. 퍼져나가는 동안의 알 수 없는 자가증폭(自家增幅)의 속성은 때로 선동력으로까지 커벼 어줍잖은 기폭제(起爆劑)로도 강력한 권력 집단의 몰락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도 한 까닭이다.


위의 말은 내가 한 말은 아니고, 작가 이문열씨가 삼국지 초반 "황건의 난"을 소개하며 덧붙인 말이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 이야기는 진실 혹은 진리에 근접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유언비어에 의한 누명으로 생사를 달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달리하기도 했던 것이다.

아주 가까운 예로 "쓰레기 만두파동"을 들 수 있다. 한때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쓰레기 만두파동"은 결국 실체가 없는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그 과정에서 상당수의 만두 제조 업체가 폐업을 선택했고, 일부 경영인은 따가워진 사회의 시선과 경제난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또한 이 사건을 통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먹거리에 대한 불신을 키웠고, 국가 이미지에도 심대한 손상을 입었다. ― 실제로 이 당시 외국에 수출된 많은 먹거리들이 리콜되어 돌아왔다. ―
"쓰레기 만두 파동"의 요지는 단무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단무지 짜투리 부분을 만두 제조에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단무지를 가공할때, 그 원료로 사용되는 무를 통째로 단무지로 가공 한 후 잔뿌리나 무의 껍질등을 벗겨 포장하게 되는 데, 그 잔뿌리나 껍질등이 만두소의 재료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을 대충만 본다면 잔뿌리나 무의 껍질등이 단무지를 만들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 혹은 "이물질"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한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진실은 정말 다른 곳에 있다.
일단 음식물 찌꺼기 정도로 생각될 수 있는 단무지 짜투리들은 우리가 먹고 있는 단무지와 완전히 동일한 조건(위생 조건·가공 절차 등)하에 가공된 것이다. 단무지 제품과 그 짜투리는 최종 포장 안에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못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위생 조건으로 본다면 단무지 자체를 안먹는다면 모를까 그 짜투리가 위생이나 영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 사실 나는 단무지 자체를 잘 먹지 않는다. 하지만 단무지 짜투리가 음식물 쓰레기나 불량품이라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할수 없다. 이것은 마치 과일 농장에서 "상품(上品)"의 과일을 상자포장해 고가의 제품으로 만들고 "하품(下品)"의 과일을 따로 모아 "떨이"제품을 만드는 것보다 덜하면 덜했지, 더한 차이는 아닐 것이다.
또 한가지, 만두소를 만들때 상품(上品)의 단무지를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가공의 첫단계는 다량의 수분을 포함한 단무지에서 물을 짜내는 것일 것이다. ― 실제로 집에서 만두소를 만들때또 먼저 김치의 물을 짜내는 것이 보통이다 ― 하지만 잔뿌리나 단무지의 껍질은 제품화된 단무지에 비해, 육질이 단단해 함유하고 있는 수분양이 적어 가공하기도 수월할 수 있다.
즉, 만두소를 만들때 단무지 짜투리를 사용하는 것은 위생·영양상 아무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가공의 수월성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그냥 버려질수 있는 잔뿌리와 껍질을 사용함으로써 음식물 쓰레기도 그만큼 줄어들이 때문에 오히려 우리에게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수도 있는 일인 것이었다. ― 아마도 예전처럼 농촌 지도소가 제 역할을 한다면 단무지 짜투리 활용을 독려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
결과적으로 "쓰레기 만두 파동"에 관련된 모든 사항은 법정에서 '무혐의'처리 됐으나, "무혐의" 처리에 대한 내용을 "쓰레기 만두 파동"을 떠벌일 때만큼의 비중으로 보도해 주는 언론사는 없었다.

내가 문제라고 보고 있는 것은 이런 언론의 보도 행태이다.
사실 "쓰레기 만두파동"에서도 정말 제대로 된 정론지(正論紙)라면, 한번쯤 그 실체적 진실에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하지만 각종 언론 매체는 공을 앞세우기 위한 경찰 권력이 불을 붙여준 "쓰레기 만두 파동"에 기름을 붙고 부채질하는데 급급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언론 스스로 유언비어를 확대 재생산하는 첨병의 역할을 자임하게 만들었다.

이에 덧붙여 이 사건을 통해 느끼게 된 문제점 중 또 하나는,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이른바 "스타"들의 자세이다. 쓰레기 만두 파동 당시, 영화 "올드 보이"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배우 최민식은 "나는 올드보이에서 만두만 먹었을 뿐 아니라 평소에도 즐겨 먹는다. 쓰레기 만두를 만드는 사람은 사형감이다."라는 요지의 인터뷰를 내기도 해, 국민들의 원성에 기름을 붙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 사건 자체가 무혐의로 처리된 시점에 그의 후속 발언에 대한 전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대부분의 스타들은 그들 스스로 "공인(公人)"으로 자처한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스스로의 자처함에 걸맞지 않게 사회적 책임도 느끼지 못하고, 대중에게로의 발언이나 행동에도 신중함이 없다. ― 나는 연예인이 공인이라는 점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공인이라 함은 공공의 돈으로 공공의 직(職)을 수행하는 국회의원이나 공무원, 혹은 공공 기관 근로자로서, 그 사생활의 청렴함 역시 공공의 감시 대상에 포함되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연출된 노출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얻어가는 사람으로서, 그 사생활은 공공에의 노출 범위가 아니며, 청렴함 역시 개인의 양심에 따를 뿐이다. 하지만 대중에게로 잦은 노출 빈도에 의해 사회적 책임이 증가하고 있으며, 그들의 도덕성은 법제적 테두리가 아닌 개인의 양심에 의해 강제되어야 한다. ― 여기서 연예인 혹은 스타들에게 바라는 사회적 책임이란 여론의 흐름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해 인기를 제고(提高)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론이나 대중이 미처 짚어가고 있지 못한 점을 인지해 신중하게 대중을 이끄는 것을 말한다. 그런 시각을 갖추지 못한 연예인은 차라리 침묵함만 못하다. 물론 혹자는 "개인의 발언권 침해"라 말 할수도 있지만, 그들의 공공에의 노출로 금전적 이득을 보는 사람인 만큼, 또 그만큼 사회적 파급력을 갖춘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사건은 제대로된 식자(識者)라면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는 또다른 진실을 알고자 노력하고, 그 진실의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시켜주는 일화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근 일고 있는 광우병 파동에 대한 문제는 어떠한가? 인터넷 기술의 발달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네티즌들이 생중계하고, 시시각각으로 시위 현황을 업데이트해준다.
여기서 시위장면 생중계는 차치(且置)하고, 시위 현황에 대한 뉴스는 이른바 "카더라"통신이 난무한다. 또 이를 인터넷 언론이나 정론지에서는 여과없이 재중계한다. 물론 그 근거를 밝힐수 없기에 기사의 마지막 부분에는 "증거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로 끝나고 있는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일반 네티즌들은 그 기사를 보고, 그 기사가 진실이라 생각하고 분노한다. 또 이 기사의 진실성에 시비가 일면, 해당 언론사는 은근슬쩍 기사를 내리면 그만이다. 일단 조회수를 올리고, 판매고를 올리고 보자는 "황색지"의 전형이다.
사실 시위현장의 인터넷 생중계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군사정권 아래서의 언론 조작 예로, 보도 사진을 들 수 있다. 지면으로 나가는 사진은 시위대의 반대편. 즉 전경측에서 바라본 시위대의 모습이 주로 채택된다. 그렇게 되면 사진에는 성난 모습으로 전경에게 다가오는 시위대의 모습을 부각돼 시위대의 폭력성을 강조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객관성"때문에 시위 현장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것을 진실이라 믿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시위현장 중계의 열에 아홉은 시위대의 편에서서 촬영한 장면을 보여주게 된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주도적으로 "미국 소고기 수입 반대"시위에 나간 사람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객관적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행동해도 늦지않으나, 대다수의 대중들이 너무 즉흥적인 반응들이 보이고 있는것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되는것이 사실이다. 인터넷에 범람하고 있는 정보들의 객관성과 진실성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래(古來)로부터 지성인에게는 사회적 책임을 물어왔다. 사회나 그 구성원이 올바른 정신과 균형잡힌 비판의 잣대를 가지고 발전해 나갈수 있도록 그들을 이끌어줘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어줍짢은 지성인들은 황색지와 동화되어 자신의 아집을 공고히 한 채, 사회 전반의 시각을 편향된 방향으로 몰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싶은 걱정이 된다. 이런 다소 건방진 글을 쓰는 나 역시도, 어설픈 배움과 시각을 가지고 분에 넘치는 글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흩뿌려 놓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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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소고기는 과연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 것일까?

국산 소고기의 광우병에 대한 안전성 여부 문제는 이미 몇몇 언론을 통해 언급되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는 여기에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여기에 올린 나의 생각은 이미 관련 문제를 언급한 특정 언론의 주장을 그대로 옮긴것이 아니라, 복수의 통계 및 보도자료를 통해 얻은 정보를 나름대로 정리한 것임을 미리 밝힌다.

소고기는 사육방식에 따라 크게 곡물비육우(穀物肥肉牛, Grain-fed)와 목초사육우(牧草飼育牛, Grass-fed)로 나뉜다. 말 그대로 곡물비육우는 주로 곡물을 사료로 축사에서 키워지는 소고기를, 목초사육우는 방목 상태에서 목초만을 먹고 자라나는 소고기를 가리킨다.
미국을 포함한 북미산 소고기의 대부분은 곡물 사료를 먹이는 곡물비육우인데, 이때 동물성 사료도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동물성 사료는 광우병 등의 발병 요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소비자들의 수입육에 대해 우려와 부정적 편견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뉴질랜드와 대부분의 호주산이 목초사육우에 해당한다. 목초사육우는 목초를 먹고 방목 상태에서 자라나기 때문에 곡물비육우에 비해 체내 지방 축적이 낮고 광우병 발병 확률 또한 낮아진다.
하지만 맛에 있어서는 목초사육우가 곡물비육우에 비해 떨어진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마블링(근내 지방도)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은 꽃등심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거나 붉은 살점에 적당히 지방이 어우러져 나는 감칠맛을 좋아하는데, 목초사육우는 소들이 자유롭게 초원을 다니며 풀만을 뜯어먹고 지내기 때문에 몸안에 지방이 쌓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곡물비육우는 상대적으로 마블링 상태가 좋을 수 밖에 없으며, 곡물비육우가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는 더 맞는 것이다.
목초사육우의 예에서 "대부분의 호주산"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렇게 국내 소비자들이 마블링 좋은 소고기를 선호하고 값도 훨씬 비싸기 때문에 호주에서 한국 수출용 육우의 일부를 곡물로 비육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곡물비육우가 맛은 좋을 수 있으나, 소를 좁은 우리에 가둬놓고 운동량을 줄이며 열량 높은 사료를 먹여 마블링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에 이로울 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이다.

국내에서 마블링이 잘 된 소고기를 선호하는 현상이 명백하고, 우리나라에 소고기를 수출하고 있는 일부 국가에서 조차 우리 입맛에 맞게 곡물비육우를 생산해 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국내산 소고기는 어떨까? 확인해보나 마나한 사실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소고기는 곡물비육우이다. 이것은 소비자의 기호 뿐 아니라, 목초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적 한계점에도 상당부분 기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 사육되고 있는 소고기가 광우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 사육 환경, 특히 그 먹이를 관심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광우병이 전염성이 아닌, 동물성 먹거리에 포함된 프리온(Prion)이라는 물질이 "전달"되어 발생하는 병이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국내에서 소를 비육하는데 활용하는 먹이 중 대표적인 것이 "여물"이라 불리는 건초와 사료일 것이다. 건초의 대부분은 국내에서 재배되고 있는 곡물을 수확하고 난 뒤에 거둬들이는 짚을 활용할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안전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소나마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사료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료 부문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는 1967년 국내에 진출해 2007년 매출이 5000억원에 이르는 애그리브랜드퓨리나이다. 이 업체는 2007년 매출 순위를 기준으로 한 매일경제 1000대 기업 순위에서 453위를 차지할 정도의 대형 기업이다.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 애그리브랜드퓨리나코리아는 외국계 업체의 한국 법인인데, 그 회사의 모기업이 시장점유율 40%의 세계 최대 곡물 회사인 카길(Cargill)이다.
카길이라는 회사는 다우너(일어서지 못하는 소)를 도축하고, 지난해 대규모 쇠고기 리콜 사태를 불러 일으킨 회사로도 유명하다. 나는 여기서 '과연 카길이 운영하고 있는 목장에서는 어떤 사료를 먹일까?'라는 곳에 생각이 미치자 당황스러움과 찝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문제는 또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광우병을 문제로 육골분(肉骨紛)을 직접 소에게 먹이지 않고, 그 육골분을 비료로 사용한 곡물을 소에게 먹이는 3단계 과정을 거치고 있다. 즉 직접적으로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이지는 않지만, 영양 순환 과정에서 그 육골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소의 사료로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점은 국내 언론에서 미국산 소고기가 여전히 광우병에 노출되어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국산 소고기의 취약점이 드러난다. 비단 카길 계열사의 사료를 직접 사용하지 않더라도 사료에 사용되는 곡물 원료의 태반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현실로 봤을때,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그 어떤 사료도 광우병에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다우너가 100% 광우병을 앓고 있는 소라거나, 국내에 유통되고 있는 사료가 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그것과 완전히 동일한 원료로 만들어졌다고도 말 할 수도 없다. 또한 동물성 사료 차체도 광우병의 원인이라는 것이 유력한 설이기는 하나 아직까지는 어디까지나 "설"이다. 그러나 우연히도 그 카길이라는 회사가 이미 우리 축산업에 뿌리를 깊히 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성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심정적으로는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일이다. 어쩌면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고 다우너 도축에 대해 우려하기에 앞서, 국내에 수입되는 각종 사료와 그 사료의 원료에 대해 우려하거나 수입을 반대해야 옳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국내 축산업에 뿌리를 깊히 내린 업체를 일시에 축산업에서 배제한다는 것은 국내 축산업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될수도 있어 그 어려움이 있다.

인간광우병 (vCJD)은 프리온이라는 단백질이 일으키는 뇌질환의 일종으로, 수용성 단백질이 불용성으로 변하여 아밀로이드 섬유를 형성하여 뇌조직에 축적된다는 점에서 치매와 병리적 메커니즘이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30~40대 치매환자는 지난해 1242명에 달한다. 5년 전인 2003년 보다 20% 가량 늘어난 수치라고한다. 치매 중 가장 많은 것(60~80%)이 알츠하이머 치매이고 뇌졸중 등에 의해 발생하는 혈관성 치매가 뒤를 잇는다. 30~40대에 오는 치매의 증상은 60~70대에 발생하는 노인성 치매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건망증에서부터 시작해 서서히 진행되는 노인성 치매와는 달리 30~40대 치매는 행동부터 장애가 오는 경향이 있다고한다. 길을 찾지 못하거나 공간 개념이 떨어지기도 한다. 사실 이는 인간광우병의 증상과 너무 유사하기때문에, 인간광우병은 치매로 오해되어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 할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치매로 죽은 환자의 사후 부검결과 5~13%가 인간광우병"이었다는 예일대와 피츠버그대 의학팀의 발표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광우병의 발병 인자로 알려진 프리온은 300℃의 고온에서도 죽지 않기 때문에, 부검에 사용한 모든 기자재는 전부 폐기처분해야 하는데, 수술 기자재를 폐기하고 재구입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국내 의료기관이 국내 발병을 증명하거나 발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국내에 인간광우병 환자가 존재하거나 이미 그로 인해 생사를 달리했을 수도 있다는 강력한 의구심을 가지게 만든다.

이같은 현상들은 우리가 이미 먹고  있는 고기 자체가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대목이며, 어찌보면 육식 자체에 대한 경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위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최근들어 미국 소고기 논쟁은 어이없게도 "이념의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부나 여당에서 정국의 방향을 그렇게 몰고 가려는 경향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정부에 바라는 것은 격화되는 집회와 시위의 선동 주체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고, 시위에 참여한 국민이 말하고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직시했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좌우간의 대립이 사실이고, 대규모 항의 집회에 좌파 진영이 깊숙히 관여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들에게 '호재'를 조성해 준것은 정부라는 점은 명백하다. 또 국민들은 좌파 세력에 부화뇌동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안전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미국 소고기가 수입되더라도 먹기 싫다면 안 사먹으면 그만"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모든 먹거리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이들은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장사치들이다. 중간 유통 과정에서 단 한사람만 이윤 추구를 위해 비양심적인 행위를 한다면, 원산지 표기에 대한 모든 노력은 무위로 돌아간다. 또 그 먹거리에는 "소고기"라는 이름이 붙어있지 않더라도, 그것을 원료로 하는 수많은 먹거리들이 있어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나온 이야기다. 정부가 소고기 수입을 실천에 옮기고, 국민들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고자 한다면, 미국산 육류 수입업체의 목록을 공개하고, 그 수입업체와 거래하는 업체명 역시 전수 공개해 국민들이 전 유통과정을 걸쳐 미국산 육류 자체가 섞이지 않은 먹거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줘야 할 것이다.



이 글을 끝 마칠 즈음 내 머릿속에 스치는 난제가 있다.
의약품 생산에는 소 도축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무수히 활용한다고 한다. 어쩌면 소고기 자체보다 의약품이 광우병 위험에 훨씬 심대한 원인 물질이 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앞선 의료 선진국. 치료 목적으로 불가피하게 사용하게 되는 각종 미국산 의약품은 수입을 허용해도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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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 광우병, 국내산 소고기, 카길, 퓨리나


[워런 버핏] 누군가에게 믿음을 얻어야 한다면 이 정도는......

직장 생활을 하고 "투자"라는 것에 관심이 생기고 부터 알게된 사람은 여럿 있겠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사람을 꼽으라면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일 것이다.
워런 버핏은 1950년대에 100달러로 주식투자를 시작, 지금에 이르러서는 세계 최고의 갑부로 꼽히게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평가 하기에 저평가 된 회사의 주식을 장기간 보유해, 수익을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단기간의 주가 변동은 의미가 없다고 믿기 때문에 주식시장 시세를 보여기위한 단말기 조차 방에 두지 않는다고 한다.

최근 이 워런 버핏이 그의 투자자들에게 어느정도로 믿음을 주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그런 믿음을 얻게된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투자자들이 워런 버핏에게 주고 있는 믿음은 "절대적"이라는 표현 그 이상이었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얻어야 하고, 그들의 노력과 재화를 포함한 인생 일부를 투자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의 믿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믿고 힘들 보태어 주고 있거나, 혹은 그래야 하는 사람들에게 어느정도의 믿음을 주고 있을까? 물론 나는 지금 그들에게, 워런 버핏이 자신의 투자자들에게 주는 것 만큼의 믿음을 주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머물러 있는다면, 그것은 나 스스로에게도, 또 나에게 믿음을 조금이나마 나눠주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 될것이라 생각한다. 워런 버핏 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에 대한 믿음을 키워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아래는 관련 기사 전문이다. (머니투데이 오마하 김준형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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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의 나이하고 건강이 제일 걱정이야..."
"1분기 실적이 나쁘다고? 이유가 있었겠지 뭐"

2일(현지시간) 워런 버핏(77)의 지주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주칵테일 파티가 열린 미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보석 쇼핑센터 '보셰임'.
버크셔의 자회사인 보셰임은 보석매장만 5800㎡규모에 10만점의 보석을 전시·판매하고 있는 세계최대의 단일 매장이다. 음식점 편의시설 의류 액세서리 매장 등을 포함, 대형 쇼핑몰을 이루고 있다.

자회사 보셰임 주최 칵테일 파티..1년 매출 20% 하루에..

전통적으로 버크셔 해서웨이는 주총 전날 이곳에서 주주들에게 칵테일과 뷔페 저녁을 대접하는 '전야제'를 연다. 올해 전야제에도 3만명 이상이 몰렸다는게 회사측의 추산이다.

주주들만이 입장이 허용되는 '주주를 위한 날'이지만, 3만명의 '부자'들이 몰려드는 이날은 보셰임 입장에서는 1년 최대의 대목이다. 주주들에게는 특별히 값을 깎아주기 때문에 버크셔 주주들은 '기념삼아' 보석 쇼핑에 나선다. 보셰임의 마케팅 담당 조니 로빈슨씨는
"전야제 하루동안의 매출이 어느정도인지는 공개할수 없다"면서도 1년 매출의 20%는 되느냐는 질문에 "크게 틀리지는 않다"고 답했다.

보셰임 제품 뿐 아니라 버크셔 해서웨이 티셔츠, 버핏이 그려진 카드게임, 퍼즐 등 갖가지 '캐릭터상품'들이 이날 전야제에서 날개돋친듯 팔려나갔다.

오후 6시 전야제가 열리기 직전, 파생상품 투자손실 등으로 인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1분기 순이익이 무려 64%나 줄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주주들의 표정에서는 전혀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 전날인 2일 계열 보석 판매회사'보셰임'에서 열린 전야제에서 주주들이 보석을 고르고 있다.[오마하=김준형 특파원]


주주들 버핏 건강·후계자 걱정..분기 실적엔 초연

현직에서 은퇴해 플로리다에서 산다는 주주 데이먼 머서씨(73)는 기자가 버크셔의 1분기 실적을 알려주자 "그랬어? (내일 주총에서)버핏이 이유를 설명하겠지, 당장 팔 것도 아닌데 (1분기 실적이) 뭘 그리 중요해. 여기 있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걱정하지 않을걸?"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몇년전인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B주를 사서 보유하고 있다는 그는 "문제는 버핏의 나이와 건강"이라며 "버핏이 회사를 운영하지 못하게 되면 아마도 그때가 주식을 팔 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유주식 규모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매입후 지금까지 300%정도 수익이 났다고 말했다.
그는 세 자녀중 스키리조트에 근무하는 아들과 교육컨설팅회사에 다니는 딸 역시 자기가 권해 버크셔 B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버핏이 3일 주총에서 자신의 후계자를 공개할지도 관심사이지만 주주들은 버핏 없는 버크셔를 떠올리기 싫어했다. 금융분야에서 일한다는 존 워커씨(42)는 "버핏이 떠난 이후에도 후계자가 회사를 잘 이끌어갈지 어느정도 기간은 리스크를 감수하겠지만 불안해지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버크셔의 실적에 대해서도 "요즘 파생상품의 가치는 평가 자체가 힘들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발딛을 틈도없이 '보셰임'매장에 꽉 들어찬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들.[오마하=김준형 특파원]


버크셔, 1분기 순익 64%↓..파생상품 위험 노출

한편 이날 발표된 버크셔 해서웨이의 1분기 순이익은 9억4000만달러, A주 1주당 607달러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4% 감소했다. 매출도 전년의 4억4200만달러에서 1억1500만달러로 74% 줄었다. 미실현 파생상품 손실도 17억달러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파생상품 투자를 제외하면 주당 순이익은 1247달러에 달하지만 블룸버그가 집계한 3명의 애널리스트들의 기대치 1430달러에는 못미치는 것이다.
FTN미드웨스트 증권의 애널리스트 찰스 해밀턴은 "버크셔 해서웨이는 중대한 파생상품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버크셔 해서웨이에 대해 '중립'투자의견을 유지했다.

워런 버핏은 올해초 사업보고서에서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보험산업의) 파티는 끝났다(Party is over)'라고 언급한 바 있다. 신용경색과 경기침체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상반기의 수익 덕에 지난해 전체적으로는 수익을 냈지만 '험난한 시기'가 닥쳐올 것이라는 점을 미리 주주들에게 경고한 셈이다.

분야별로는 보험 수익이 70% 줄었다. 보험사 가이코의 자동차 부문 수익이 37% 감소한 반면 재보험 회사인 제네럴 리는 수익이 30% 급등하는 등 보험부문 사업부문별로 실적이 엇갈렸다.

주주들을 위해 음식과 칵테일이 마련되고 밴드들의 공연도 이어진다.[오마하=김준형 특파원]


'파티는 아직 안끝났다'..버핏 "파생상품 장부손실 의미없다"

그러나 실적 내용을 들여다보면 '파티는 끝났다'고 결론짓기는 이르다.
비보험부문 사업부문 수익은 오히려 6.3% 늘어난 8억9400만달러에 달했다.
버핏은 "규정상 손실을 반영했지만, 실제로는 장부상 손실은 보통 의미가 없다"며 "(상품 만기인) 15-20년 뒤에는 수익을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1분기 실적급락에도 불구하고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는 이날 0.22% 떨어진 13만3600달러에 마감했다.

버크셔 해서웨이 주가는 지난 12개월간 23%나 상승했다. 지난연말 기준으로 20년간 4700%가 올랐다. 1억3000만원짜리, 혹은 460만원짜리 주식이 데이트레이딩 대상이 될수는 없다. 수년, 수십년간 주식을 보유해온 버크셔 주총에 모여든 주주들에게 1분기 실적과 0.22% 주가하락은 별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보셰임'매장 안쪽에서 자리를 찾지 못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들이 길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다. '부자 주주'들이지만 공짜음식을 받기 위해 20-30분에 걸쳐 100미터가 넘는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오마하=김준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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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난 져본 적이 없다"

홍정욱이라는 사람은 학창시절의 나에게 있어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어리숙하게 시작된 유학생활을 눈물나는 노력으로 성공으로 이끈 그의 유학 이야기. "7막 7장"을 통해 본 그의 이야기는 우리 부모님께도 매우 큰 자극이 될수 밖에 없었고, 그 주인공은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의 대표적 모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더구나 당시의 나는 이런 저런 활동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내가 학업을 등한시 여긴다 생각 하셨을테니, 그러한 압박감은 더욱 컸으리라. ― '7막 7장'이라는 책을 처음 접한 시기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중학교때는 운동과 컴퓨터에 빠져 부모님 속을 썩여 드리고, 고등학교때는 문학동아리에 빠져 부모님 애를 태웠으니, 그 정확한 시기는 중요치 않다고 본다. ―

그러던 그가 헤럴드 미디어 그룹의 회장을 그만두더니, 이번 총선에서 덜컥 국회의원까지 돼버렸다. 그야말로 "엄친아"의 대표주자로 우뚝 선 것이다.

최근 홍정욱과의 인터뷰 기사가 조선일보 웹사이트에 올랐다.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20대 청년의 기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활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벌써부터 일신의 편안함위해 세상과의 타협에 관대해진 나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는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그가 "너무" 엘리트라는 점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에대한 나의 열등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도전자로서의 그 모습. 여전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하고, 그 도전을 위해 뒤돌아 보지 않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편안함을 찾고자 세상과 타협하는 순간"이 가장 두려울 것이라고 얘기하곤 했던 내 스스로에게, 그는 조금이나마 세상을 살아가는 롤 모델이 되어줄 것 같다.

아래는 관련 기사 전문이다.
(조선일보 강인선 기자, ins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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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홍정욱(38) 전 헤럴드 미디어 회장은 좀 꼬질꼬질했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은 까무잡잡했고 살도 빠진 듯했다. 선거 사무실은 어수선하고 어설펐다. 선거 20일 전 전략공천이란 명분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서울 노원 병)에 투입돼 후닥닥 선거를 치른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홍 당선자는 15년 전 하버드 수석 졸업 논란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다.' 그 소동으로 사람들은 하버드엔 수석 졸업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 그가 쓴 미국 유학기 '77'이 밀리언 셀러가 되면서 홍정욱은 '연예인급 유명인사'가 됐다. 영화배우 아버지 남궁원(74·본명 홍경일)을 빼닮은 외모도 한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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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선거사무실에서 만난 홍정욱 당선자는 "아직 마흔 살이 안 된 사람이니 실패도 굴곡도 모를 것이라고들 하지만 나이에 비하면 많은 일을 겪었다"고 했다. /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홍정욱은 '조기유학, 강남, 하버드, 명문, 성공'을 상징했다. 그에 대해 중립적인 사람은 드물었다. 아주 좋다거나 너무 싫다고 했다. 그가 총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에 바로 저런 사람이 필요하다' '결국 국회의원 하자는 것이었나'였다. 총선 일주일 후 유리창에 시퍼런 비닐종이를 발라 가까스로 햇볕을 가린 사무실에서 홍 당선자와 마주 앉았다.

 

― 선거를 해보니 어떻던가요?

"힘들었어요. 네거티브 선거전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지요. 상대방이 만든 '귀족 대() 서민'의 구도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했어요. 승리한 후에도 일부 언론은 이 결과를 저의 승리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당선된 것을 이 지역 주민의 선택이 아니라 진보의 몰락으로 보더라고요. 피도 눈물도 없는 실용주의적 귀족주의의 승리라고 하더군요. 감당하기 벅찬 분석과 반응이지요."

 

― 주변에서 "홍정욱이 무얼 했다고 국회의원이 됐느냐"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왜 그럴까요?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당선 확정 후 제가 환호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마치 '성공하기 위한 기계' 같은 모습이었어요. 선거에 나간 사람 치고 '승리를 확신한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도 제가 그 말을 하면 확신이 줄줄 배어 나와요. 그걸 보면 사람들이 '저놈이 한번 거꾸러지는 걸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나 봅니다. 사실은 저도 떨었고 괴로워했어요."

 

'빠다 냄새'도 거부감의 중요한 이유인 것 같던데요.

"저는 그 말을 굉장히 싫어해요. 생긴 게 그렇다는 건가요? 말투가? 사고가 서구적이란 거예요? 아니면 느끼하다는 겁니까? 잘 모르겠어요."

 

― 전부 다 포함된 뜻일 겁니다.

"서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거야 미국서 17년을 살았으니 어쩔 수 없지만, 여자들에게 느끼하게 치근덕거린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 뜻이 아니고, 미국 사람 같다는 거지요. '77'에서 유학시절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되려고 너무 애썼던 이야기 같은 걸 보면 좀 불편해지거든요.

"그때 저에겐 그게 중요했어요. 미국 사립학교란 닫힌 공간에서 동양 아이들은 끼워주지도 않았어요. 미국서 공부 다 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지만, 미국의 교육뿐 아니라 전통과 관습까지도 다 익혀서 주류로 살다 떠나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어요."

 

― 그런 식으로 '철저하게 이용해주겠다'는 태도가 얄밉게 보이는 거 아닐까요?

"'77'은 스물세 살 때 썼어요. 사람들이 스물세 살 때 자신이 쓴 일기장을 한번 들춰 봤으면 좋겠어요. 그 나이에 가장 멋있게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쓴 책이니까 지금 보면 당연히 유치하지요."

 

― 책이야 그렇다 치고, 요즘도 홍정욱이 말하는 건 어쩐지 다 꾸며낸 이야기 같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든 걸 계산해서 말하는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어요.

"'77'이란 책 제목 때문인 것 같아요. 인생을 그렇게 7단계로 나눠 한 단계씩 올라간다고 보는 것이지요. 거기서 7이란 기독교에서 말하는 완벽한 숫자를 의미합니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제목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충실한 삶을 살라는 것이지 단계적으로 승리를 쟁취하라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희망을 파는 장사꾼이 되겠다'고 했지요. 그건 '그냥 일 잘하는 정치인'을 넘어서겠다는 뜻이지요?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던져야 합니다. 그러나 매일 그런 메시지를 던진다고 국민들이 희망과 긍정을 느낍니까? 희망을 심어주는 행동을 보여줘야 합니다.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리더십은 비전에서 시작해 성과로 끝납니다."

 

2003년에 했던 한 인터뷰를 보니, 언론·출판·교육 사업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던데, 그것 역시 정치인으로 가는 발판에 불과했던 것인가요?

"그건 진짜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미디어 경영자로서 앞으로 30년 정도 더 일하면 언론계에 한 축을 세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걸 다 던질까 말까를 두고 6개월 정도 고민했어요."

 

―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뭡니까?

"작년에 회사가 안정되면서 경영에 대한 권태를 느꼈습니다."

 

― 언론사 경영 5~6년 하고 나니까 권태가 오던가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언론사 경영자로 지내니 젊은 나이에도 어딜 가나 대접받았고 안정되고 편했어요. 예전에 월 스트리트에서 일할 때 55조원짜리 인수합병 팀에 선발됐을 때 상사가 격려해주려고 저를 불렀어요. 그런데 그때 '지금 이것을 던지지 못하면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남의 밑에서 일하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상사 앞에 앉자마자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 왜 꼭 던져야 합니까?

"저는 나라, 사회, 공직, 국가, 세계, 역사, 이런 것들을 지향합니다. 서른여덟에 편하게 살자는 결정을 내리기엔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유세하면서 "나는 이념가도 선동가도 아니고 성취가이자 경영자"라고 했습니다. '지금 안 던지면 못 던진다'는 식으로 조바심을 내는 건 '성취 중독증'인가요?

"성취 중독이라기보다는 모험과 도전을 좋아하는 거지요. 회사 다니면서 적절한 성과를 내봤고 적자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키면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도 해봤습니다. 언젠가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지금 거기로 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입니다."

 

― 자기 자신의 성공이나 성취가 아닌 다른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자기를 던져본 일이 있습니까?

"진정한 희생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나의 입신양명과 영달을 위해서만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변명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늘 제 운명의 주재자로 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억대 연봉을 받는 회사원보다는 구멍가게를 해도 내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해본 적 있습니까?

", 봉사 활동이요? 그건 많이 했어요."

 

― 하버드 입학 지원서에 쓰기 위한 봉사 활동 말고 진짜 봉사 활동 말입니다.

"글쎄요. 이기적으로 살진 않았어요.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을 함께 업그레이드시켜 왔어요. 그것이 리더의 중요한 자질입니다.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조직원을 같이 업그레이드시키는 것 말입니다."

 

― 홍정욱이 자기 성공을 추구하는 일에서 프로라는 건 인정해요. 그러나 공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정치인이 될 것이란 증거가 될 만한 경력이 없다는 거지요.

",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성취와 봉사에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그러나 저 자신의 성취를 통해 다른 사람을 함께 업그레이드시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역 현안과 교육, 경제 문제에서 가장 실천적인 실행을 통해 우리 지역구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요?"

 

― 그건 선거유세용 발언이고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던진 표가 홍정욱을 업그레이드하고 끝나는 건 아닌가 하는 거지요. 국회의원 몇 년 하다가 권태로워져서 또 다른 도전을 찾아 나설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저만 업그레이드한다고요? 국회의원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저는 작긴 해도 언론사의 사주였어요. 국회의원이 누리는 것 중에 언론사 사주가 누리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득권을 버리고 정치를 시작했어요. 편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을 버리고 힘든 검증의 세계에 들어왔어요. 제가 4년 동안 국회의원 배지 달고 저만 업그레이드시키고 끝날 것이라고요? 그렇지 않아요. 많은 일을 해서 승부를 내겠습니다."

 

― 다음 단계로는 무엇을 추구합니까?

"점점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이 꿈입니다."

 

― 정치를 오래 하긴 할 건가요?

"여기저기 쿡쿡 찔러보다 정치를 한 게 아니고 인생의 한 단계를 완성하고 정치를 한 겁니다. 정치와 공직 참여가 제 인생의 종착역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 그래서 군 복무도 하고 언론사 경영도 했던 건가요?

"인간에게 그 정도의 치밀함이 가능할까요? 군대는 미국서 벤처 하다가 망하고 나서 돈도 없고 오갈 데 없어서 귀국해 부모님 집에 얹혀살다가 갔어요. 그렇게 딱딱 시기를 맞춰 사업도 망해주고 그랬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그렇게 치밀하면 아내의 귀화나 아이들 이중 국적 문제는 왜 나왔겠어요? 미리미리 준비를 했겠지요. 오죽하면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에서 왜 사전에 준비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요."



총선을 앞두고 그에게 약점이 될 만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2004년 헤럴드 미디어 노조로부터 업무상 배임과 횡령 혐의로 고발됐던 일, 아버지 남궁원씨의 다단계 판매업체 사기사건 관련설, 미국 국적인 부인 손정희씨의 귀화신청, 자녀들의 이중국적 등이었다. 홍 당선자는 "나와 아버지 문제는 깨끗이 해결됐고 다른 문제도 합법적인 틀 안에서 불법도 편법도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나가자고 결심했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 그래도 군복무 시점은 좀 찜찜해요. 어머니 환갑이 지난 시점이라 6개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좀 찜찜하지요. 그래서 어디 가서 군복무 했다는 이야기 잘 안 합니다."

 

― 재산 신고한 게 8억원 좀 넘던데 왜 이렇게 적어요?

"제가 자본금 5억원짜리 법인을 세워 그 회사를 통해 헤럴드 미디어와 동아TV를 인수를 했기 때문에 선관위에 신고할 때는 5억원만 한 겁니다. 선관위에 여러 번 문의했는데 제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주식만 신고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문제가 될 것 같아서 헤럴드 미디어와 동아 TV의 실제 제 지분에 대해서도 기록을 해서 제출했습니다."

 

― 국회에도 한나라당에도 층층시하의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묵묵히 따를 겁니까, 아니면 욕을 먹더라도 튈 생각입니까.

"안 그래도 튀는데, 튀겠다는 마음까지 먹으면 되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사는 방식대로 하면 소신 있는 정치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중도에서 좌우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실용적인 노선을 택해서 정치를 시작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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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욱 당선자의 아버지인 영화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씨는 아들이 어릴 때부터 "너는 민족과 인류에 기여하는 참인간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다. / 사진=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실용주의란 원칙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그때 그때 실용적인 길을 찾는 거니까. 케네디 행정부가 그 요란함에 비해 내세울 업적이 별로 없는 건 실용주의 때문이란 지적도 많아요.

"케네디는 이미지뿐이었지만 덩샤오핑의 실용주의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웬 덩샤오핑 이야기인가 싶다. 그를 미국 동부의 사립고와 하버드로 이끌었던 케네디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열을 내며 칭송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케네디를 전혀 모르는 사람인 체했다.



― 케네디가 역할모델 아니었어요?

"대학교 가서 케네디의 실체를 알고 나선 그렇지 않아요. 케네디는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기보다는 이미지뿐이지요. 물론 케네디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요. 그건 멋있어요. 가장 엘리트적인 환경을 갖고 있으면서 많은 서민들에게 희망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줬으니까요."

 

― 지금은 누가 롤 모델입니까?

"이젠 그런 게 필요한 때는 아니지요. 벤치마킹을 하는 건 홀로서기가 힘들어서입니다. 저도 한때는 케네디와 테드 터너 전 CNN 사장 등을 벤치마킹했지만, 어느 시점에선가 벤치마킹을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 시점이 언제지요?

"헤럴드 미디어가 흑자 전환을 한 순간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추구하는 건 이제 그만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 기업을 흑자 전환 시킨 게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학교 다니며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봤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해 인정도 받아봤습니다. 그러나 벤처사업을 하면서 도산했기 때문에 한 기업을 돈 버는 기업으로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압니다. 그래서 흑자 내는 기업을 만드는 데 모든 걸 걸었어요."

 

― 흑자 내기로 치자면 다른 기업이 더 쉬웠을 텐데 왜 하필 언론사를 선택했습니까?

"지적으로 창조적으로 끌릴 수 있는 기업이어야 했습니다. 라면 봉지 만드는 기업도 고려했어요. 그 회사를 경영하면 돈은 엄청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필이 안 꽂혔어요. 반면 언론기업을 보는 순간엔 이거다 싶어서 숫자 들여다보지도 않고 결정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담배 피워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 담배를 피우는 건 어쩐지 홍정욱답지 않은데요?

"제가 술을 잘 못 마셔요. 술 먹고 취해서 노래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게 뭔지 잘 몰라요. 치열하게 살다보니 낙을 많이 갖지 못했어요. 그래서 담배는 피워요."

 

― 외모 덕을 많이 봤지요?

"아니라면 겸손을 가장한 오만이고, 그렇다고 하면 실체적인 오만인데, 이길 수 없는 질문이네요. 주변에서 그랬다고들 해요."

 

― 조기 유학생 부모들이 홍 당선자의 진로에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조기유학 갔다가 돌아온 학생들이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있었는데 제가 선봉을 치고 나가줘서 고맙다고 해요. 자신들도 대한민국을 위해 편견 없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었다는 거지요."

 

― 인생의 절정이 언제였어요?

"아니, 어떻게 절정이 벌써 옵니까? 은퇴해서 시골로 가 그림 그릴 때가 절정이겠지요."

 

― 그림을 그려요?

"예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범인의 두뇌로 어떻게 추구할 수가 없었어요. 거기엔 단계적으로 지향할 목표가 없거든요. 저는 예술가와 과학자가 세상을 이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은 스스로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2중대에 불과해요."

 

― 언론계에서 정치로 옮겼으니 이러나저러나 2중대 체질이네요.

"그래서 예술가에게 열등감이 있어요."

 

― 또 어떤 열등감이 있나요?

"육체적인 열등감도 있어요. 아버지보다 키가 작거든요.(웃음)"

 

 

그의 아버지는 키가 180cm인데 홍 당선자는 177cm이다.

 

 

― 성격이 내성적이라면서요?

"낯을 많이 가려요. 저보고 연설과 강의를 잘한다고 하는데, 기립박수 받을 수 있는 강의를 한 시간 하려면 10시간 정도 암기하고 연습을 합니다. 완벽주의적인 기질이 있어서 못하는 것은 하기 싫어해요. 그래서 골프를 안 칩니다. 도전할 만한 게 아니다 생각되면 안 하는 식이거든요."

 

― 선거에서 지면 무엇을 하려고 했어요?

"선거를 마치고 보니 아름다운 패배라고 할 만한 패배는 없더군요. 승리만이 자신의 지지자와 이상을 위한 최상의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보여도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덜 아름다운 거예요."

 

― 누군들 좋아할까마는, 지는 거 너무나 싫어하지요?

"이렇게 말하면 제대로 '안티'가 생길 텐데…. 사실은 져본 적이 없어요."

 

― 벤처 하다 망해 먹었고, 중국 유학 갔다가 중도 포기 한 건 진 게 아닌가요?

"그건 스스로 잘 합리화했어요. 벤처 망하고 나선 실패도 경험해야 하는데 이 정도로 체험하게 된 건 축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중국 유학을 끝마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정말 최선을 다했나' 하는 후회는 있어요."

 

― 독자들이 홍 당선자를 인터뷰한 이 기사에 대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어쨌든 잘 읽힐 겁니다. 본의든 아니든 저는 호, 불호를 야기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늘 논란의 중심에 서죠.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겠지요. 싫건 좋건 읽어보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어떤 기사가 나가든 사람들이 저에 대해 갖는 견해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겁니다. 좋은 이미지든 나쁜 이미지든 그걸 깨려면 글보다 오랜 실천과 행동이 따라야 하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는데 홍 당선자의 아버지 남궁원씨가 밖에 있었다. 대낮부터 술을 한잔 했는지 불그레한 얼굴이었다. 아들 유학비 대느라고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중국음식점을 했다는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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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총선 때 서울 노원병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와 접전을 벌이다가 43.1%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헤럴드 미디어 회장으로 일하다가 지난 2월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중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가서 초우트로즈마리홀 고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 진학해 동북아지역학을 전공했다. 하버드 졸업 후에 쓴 '77' 12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하버드대 재학 중 교환학생으로 서울대 정치학과를 다녔고 베이징대에서 1년간 수학한 후 미국으로 가 스탠퍼드 법과대학원에서 법무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의 금융가에서 인수합병 전문가로 일했고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했다가 실패한 후 귀국했다. 재즈를 좋아해 '카멜롯서울'이란 재즈클럽을 열었던 경험도 있다. 부인 손정희씨와의 사이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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